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25·남)이 9일 서울 도봉경찰서 정문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에서 스스로 무릎을 꿇고 피해자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그는 이날 무릎을 꿇은 채 "이렇게 뻔뻔하게 눈을 뜨고 숨을 쉬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며 "저로 인해 피해를 당한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다"고 했다.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포토라인에 선 김씨는 마스크를 벗어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잠시 마스크를 벗기도 했다.
다만 그는 "피해 여성 스토킹한 혐의를 인정하느냐","범행을 정확히 언제부터 계획했느냐" 등의 질문에는 "죄송하다"는 답변만 반복하면서 호송차에 올라탔다.
이 같은 김태현의 행동과 관련해서는 감형을 노리고 적극적 반성 자세를 취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태현이 계획적인 살인을 한 것을 감안하면 갑작스러운 반성 자세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김씨가 세 모녀를 살해한 뒤 죽기 위해 자해를 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보통의 스토커들이 그렇듯 김씨 역시 '내가 슬퍼서 자해를 했다'고 하면서 감형을 주장할 것"이라며 "자해를 했지만 김씨는 멀쩡하게 살아 있다. 진위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또 "스토킹은 그 대상자는 살려두고 가족은 죽인 후에 시체를 보게 하는 잔혹성이 나타난다. 김씨도 그랬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김씨 주장은 순차적으로 가족을 죽였다고 하지만 그건 모르는 얘기다. 스토킹 범죄 사건은 (범인의) 거짓말을 벗겨 내는 작업부터 해야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노원경찰서는 김씨에게 살인·절도·주거침입·경범죄처벌법(지속적 괴롭힘)·정보통신망 침해 등 5개 혐의를 적용해 서울북부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경찰서를 나선 김씨는 서울북부지검에 들러 검찰 관계자와 간단히 면담한 뒤 서울 동부구치소에 수감된다. 이 사건은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임종필)에 배당된다.
김태현은 지난달 23일 오후 5시30분쯤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큰딸 A씨(25) 집에 택배 기사를 가장해 침입한 뒤 혼자 있던 작은딸과 5시간 뒤 집에 들어온 어머니를 연이어 살해했다. 그는 약 한 시간 뒤 마지막으로 귀가한 A씨마저 살해했다.
김태현은 사건 당일 피해자 자택에 침입하기 전 자신의 휴대전화로 '급소'를 검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태현은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 사흘간 범행 현장에 머무르며 시신을 옆에 두고 밥과 술을 먹는 등 엽기적 행각을 벌였다. 또 자신의 휴대전화를 초기화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하고 목과 팔목, 배 등에 흉기로 수차례 자해를 시도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