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석수 174석의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4·7 재·보궐선거 참패 충격에 휘청이고 있다.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다음달 전당대회 전까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내로남불’ 논란에 대한 쇄신 약속과 함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도 내놨다. 당내에선 선거를 이끈 이낙연 전 대표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면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정세균 국무총리 등 신흥주자로의 ‘이합집산’이 본격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격론 끝 지도부 총사퇴·비대위 전환
김태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8일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지도부의 일괄 퇴진과 비대위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김 직무대행은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지도부의 총사퇴가 성찰과 혁신의 출발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발표에 앞서 민주당은 이날 오전 긴급 최고위원회와 의원총회를 개최해 선거 참패에 대한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의총 이전에 열린 비공개 최고위에서는 신동근 김종민 최고위원 등 일부 위원이 지도부 사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으며 격론이 펼쳐졌다. 이후 의총에서 지도부 사퇴로 의견이 기울자 결국 비대위를 세우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재차 열린 최고위에서 쇄신안을 놓고 위원 간 고성이 오가는 등 김 대표의 발표 직전까지도 진통을 겪었다.
비대위원장은 친문 중진인 도종환 의원이 맡기로 했다. 민홍철 이학영 김영진 신현영 오영환 의원과 박정현 대전 대덕구청장 등 6명을 비대위원으로 선임했다. 민주당은 오는 16일 원내대표 선거를 치르고 전당대회는 다음달 2일 열 계획이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총사퇴를 결단한 지도부의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 원내대표와 당 지도부 선출 일정을 최대한 앞당겼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선출 이후엔 신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임하게 된다.
당대표 후보로는 송영길 우원식 홍영표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에는 윤호중 안규백 김경협 박완주 의원 등이 나설 전망이다.
○“과도한 선민의식엔 ‘읍참마속’의 심정”
민주당은 지도부 총 사퇴와 함께 4·7 재보선 과정과 결과를 놓고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 대변인은 “서울·부산 보궐선거 개최의 원인을 제공한 정당으로써 책임을 다했는지에 대해 성찰할 것”이라고 말했다.당 안팎에서는 2030세대가 등을 돌린 원인을 두고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 대변인도 “공정과 정의에 민감한 2030세대가 우리 당과 문재인 정부에 의문을 갖고 상당히 큰 회초리를 들었다고 본다”며 “우리가 지닌 과도한 선민의식에 대해선 근본적인 자성과 함께 필요하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거 과정에서 내로남불 논란을 일으킨 인사들에 대한 인적청산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변화가 필요함을 인정했다. 최 대변인은 “기존 수요 중심의 부동산 대책들이 여러 한계를 노출한 것은 사실”이라며 “신혼부부나 청년, 중장년 무주택자 등이 서울에서 자기집을 장만할 수 있도록 공급과 대출 등 규제를 완화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다만 도심 공공주택 공급 확대를 담은 ‘2·4 대책’이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관련 이해충돌방지법·범죄수익은닉규제법 처리 등 후속 조치는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재명·정세균으로 ‘이합집산’ 할까
재보선 대패로 내년 대선 구도를 둘러싼 당내 역학 구도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장 이번 선거를 책임지고 이끌었던 이낙연 전 대표는 치명상을 입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5~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전 대표의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는 10%에 머물렀다. 당 내에서는 ‘이낙연으로 대선은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반면 이재명 경기지사는 같은 조사에서 24%의 지지를 얻으며 2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18%)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재보선 책임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만큼 당내 대권구도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했다는 평가다.
조만간 사퇴 등 거취를 결정할 정세균 국무총리의 등판도 점쳐지고 있다. 정 총리가 ‘링’에 오를 경우 당내 친문세력 지지를 등에 업고 ‘이재명·이낙연’으로 고착화된 대선주자 레이스를 흔들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오형주/조미현/전범진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