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중국에 ‘한한령(한류 금지령)’ 해제를 요구했지만 중국 측은 이를 사실상 거절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한국이 중국의 해외 동포 백신 접종 계획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등을 지지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한국 측 요구는 무시한 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을 골라 발표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 장관은 3일 중국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게임, 영화, 방송 등 문화콘텐츠 분야의 협력 활성화를 위해 중국이 협조해달라며 한한령을 해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은 “한국의 관심사를 잘 알고 있다”며 “지속해서 소통하자”고 답해 사실상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왕 장관은 앞서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해제 요구에도 “지속적으로 소통하기를 희망한다”고 답한 바 있다. 지난해 입장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대신 한국 측 발표에는 없는 내용을 대거 공개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회담 관련 발표문을 공개하고 “양국은 건강코드 상호 인증을 위한 공조를 강화하고 백신 협력을 전개하며 신속통로(패스트트랙)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 외교부 발표에는 물론 회담이 끝난 뒤 정 장관의 브리핑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다. 특히 중국 측 발표에는 한국이 해외 거주 중국인들에게 중국산 백신 접종 계획인 ‘춘먀오 행동’을 지지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재한(在韓) 중국인을 위해 중국산 백신이 국내에 도입될 수 있음을 시사한 말이다.
중국 외교부 발표에는 한국이 중국의 CPTPP 가입 제안을 환영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CPTPP는 당초 미국이 주도해 중국을 배제한 다자(多者)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탈퇴한 뒤 현재 11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CPTPP에 가입할 의향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CPTPP 가입국도 아닌 한국이 중국의 가입을 환영한다고 밝힌 것이다. 단 한·중 FTA 2단계 협상 가속화와 중국 주도의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조속한 발효를 위해 양국이 노력한다는 점은 한국 측 발표에도 포함됐다.
반면 한국 외교부는 “양측은 시 주석의 방한이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돼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소통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 중국 외교부 발표문에는 시 주석 방한 관련 내용은 일절 포함되지 않았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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