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 지도자들은 오판을 한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 장군(1822~1885)이 대표적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공을 세워 국민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국민들 염원에 힘입어 바이마르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됐다. 두 번째 임기를 맞이하자 국정이 파탄나기 시작했다. 부관과 비서실장, 국방부 고위 관료 등으로 이뤄진 ‘문고리 3인방’에게 전권을 위임한 결과였다. 혼란 속에서 새로운 정치 권력이 부상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다. 일본 뇌신경내과 전문의인 고나가야 마사아키는 힌덴부르크가 무기력했던 원인으로 치매를 꼽았다. 재선 후 치매를 앓으며 판단력이 흐트러졌다. 결국 그는 대선 경쟁자였던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나치스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쥐기 시작한 때였다. 뇌질환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것이다.
고나가야가 쓴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는 이처럼 뇌질환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에 주목했다. 마오쩌둥, 잔다르크 등 21명의 위인이 앓았던 뇌질환과 여기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저자는 “세계사를 돌이켜 볼 때 주요 위인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할 때가 있다”며 뇌질환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뉴딜정책을 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고혈압과 뇌출혈을 앓았다. 질환 탓에 1945년 얄타회담에 집중하지 못했고, 회의 결과는 소련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소련의 붕괴를 촉발시킨 것도 뇌질환이었다. 1960년대부터 미국과 치열하게 냉전을 벌이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혈관 치매’를 앓았다. 1970년대 들어 질병이 악화됐으나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고, 소련 공산당은 집단 지도 체제에 돌입했다.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개방정책, 소련의 붕괴는 이런 흐름 속에서 가능했다고 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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