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만여 명의 스위스 소도시 추크는 세계 원자재 무역의 중심지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구리·아연 거래 회사인 글렌코어의 본사가 이곳에 있다. 글렌코어는 자회사 엑스트라타와 합병한 이후엔 세계 최대 광산 기업도 됐다. 제네바는 세계 곡물·설탕 무역의 중심지다. 군보르, 비톨, 머큐리아 같은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다. 또 다른 도시 빈터투어는 세계 커피 무역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볼카페그룹과 베른하르트 로트포스 인터카페의 고향이다.
험준한 산에 둘러싸여 고립되고 대양으로 향하는 항구 하나 없는 스위스가 세계 무역 중심지라는 사실은 믿기 힘들다. 하지만 스위스는 지난 100여 년간 원자재 무역을 통해 세계의 산업 지형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제조업이 원자재 공급처 인근에서만 발달했다. 원자재 중개 기업들은 이런 지리적 경계를 허물고 다른 대륙의 해안 산업기지로 수송했다.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세계의 부와 자원이 재분배되는 과정에 관여했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처분 소득을 달성하면서도 비교적 평등한 소득 배분을 유지하는 나라다. 《스위스 메이드》는 이런 스위스의 성공을 만들어낸 기업과 기업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위스는 은행, 명품시계, 초콜릿뿐만 아니라 의료, 제약, 화학, 건축, 무역, 관광, 호텔, 섬유 등 다양한 산업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네슬레, UBS, 크레디트스위스(CS). 리츠, 스와치, 로슈, 노바티스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스위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자는 그 배경을 스위스의 개방성에 찾는다. 과거 스위스의 주요 수출품은 다른 국가의 전쟁에 나가 용병으로 싸우는 군인이었다. 따라서 외국으로 일하러 나가고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네슬레 창업자는 독일에서 온 이민자였다. 시계 제조업은 루이 14세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달아난 프랑스 위그노들에 의해 구축됐다. 글렌코어 창업자 마크 리치는 벨기에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스위스가 관광지로 유명해진 것은 근대의 일이다. 눈 덮인 산악지대를 관광지로 만든 건 스위스인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이었다. 19세기부터 철길에 톱니를 물린 산악철도를 건설해 누구나 쉽게 알프스 경관을 즐기게 했다. ‘호텔의 왕’이라 불리는 세자르 리츠는 특급호텔의 전형을 만들어내며 스위스를 부유층의 휴양지로 만들었다. 캡슐 커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네스프레소의 네슬레, 시계를 패션 아이템으로 변신시킨 스와치 등 개방성과 혁신성으로 무장한 스위스 기업의 사례는 한국 기업에 유용한 메시지를 전해 준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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