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선거는 이기면 권력을 독점하지만, 지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칫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승자독식 게임이다. 당연히 사생결단의 배수진을 치고, 이기고 보자는 목표에 사로잡힌 나머지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기 일쑤다.
포퓰리즘은 당장에는 달콤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 될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힘든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침체돼 사회 전체가 집단적 초조감에 빠져 있을 때 포퓰리즘은 더욱 효과적이다. 당장 손에 쥐어지는 것이 더 급한 대중의 조급증에 편승해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선심성 물량공세를 퍼붓고 표를 얻을 수 있어서다.
코로나19 피해 정도와 상관없이 지급하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으로 표심을 유혹하고, 과도한 임금인상으로 노조의 환심을 사고, 지속 불가능한 복지혜택을 늘려 저소득층을 사로잡는가 하면, 감세 정책으로 중산층에도 선심 공세를 중단하지 않는다. 이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경제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는 기만일 뿐이다. 과도한 임금인상은 경제 활동을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실업률을 높이고, 세수 기반 없는 복지지출 확대는 국채 남발로 재정 악화와 인플레이션을 야기해 경제는 더욱 침체의 늪으로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의 일관된 내용이다.
문제는 포퓰리즘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포퓰리즘의 달콤한 맛에 빠지면 장기적 비전을 위해 당장의 어려움을 감내할 사회적 인내심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오히려 포퓰리즘으로 망가진 사회의 집단적 조급증은 더욱 기승을 부려 또 다른 포퓰리즘을 부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파멸의 길로 이끄는 포퓰리즘의 대표적 사례가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은 정의와 제3의 길을 운운하며 자신의 포퓰리즘을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대책 없는 퍼주기 정책에 지나지 않았다. 페론의 부인 에비타는 손을 벌리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동정을 베풀고, 배고프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조건 없이 도와주니 당장의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한때 세계 경제 7위에 있던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 사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가운데 최근에도 실업률 13%, 물가상승률 50% 내외, 빈곤율 35.4%에 이르는 경제위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포퓰리즘은 대개 자유, 민주, 평등, 공정 등 우리가 추구하고 싶은 이상으로 포장돼 있기 때문에 여간해서 구분해내기 어렵다. 냉철해져야 한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현실 세계는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자기희생도 마다않는 어린양 같은 인격자들만 사는 곳이 아니고, 이기심과 욕망에 이끌리는 보통 사람들로 훨씬 많이 채워져 있다는 점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상을 꿈꾸면서도 현실의 다양성과 복잡성, 이로 인한 이상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의 나열은 공허한 구호가 돼 포퓰리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듣기에 솔깃한 공약들이 더 쏟아질 것이다. 과도한 공약은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 정규직의 과보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공약, 물가도 잡고 실업도 줄이겠다는 공약, 복지지출은 늘리면서 세금은 줄이겠다는 공약 등은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곧 독이 되는 포퓰리즘 공약일 공산이 크다. 이런 정책목표 조합은 최소한 단기적으로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오랜 경험법칙이어서다.
국가의 장기적 비전도 없이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이며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사회현상을 보면, 포퓰리즘의 망령은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런 포퓰리즘을 걷어낼 수 있는 사람은 미래에 시선을 두고 있는 청년들이다. 청년들이여, 포퓰리즘을 표로 심판해 박물관으로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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