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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사람을 그린' 예술가 문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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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서 강아지의 재롱을 보며 웃음 짓는 서양화가 오지호, 담배를 문 채 나른한 표정으로 작품을 구상하는 천경자. 사진가 문선호(1923~1998)의 카메라 앞에서 인물들은 타인의 시선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이다. 가장 본질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대상 인물과 며칠을 함께 지내며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관찰한 작가의 힘이다.

가나문화재단이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고 있는 ‘문선호 사진, 사람을 그리다’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사들의 모습이 즐비하다. 1970년대부터 1998년 작고하기 직전까지 ‘한국인’을 주제로 작업해온 결과물이다. 작가와 오래 친분을 쌓았던 화가들을 비롯해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성악가 조수미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의 렌즈로 포착했다.

예술가 문선호가 처음 선택한 장르는 서양화였다. 1944년 일본 가와바다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박수근과 함께 입선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진로를 바꾼 것은 1950년대 중반이다. 그래도 미술에 대한 사랑은 계속됐다. ‘카메라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라는 평가가 따라다니는 이유다. 국내 미술인들과 나눈 친분은 그들의 작업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남았다. 오직 작품으로만 세상을 만나던 작가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보인 것이다.

특히 운보 김기창과의 우정은 특별했다. 그를 찍은 작품만으로 전시를 열었을 정도다. 전시장에서 만난 문 작가의 장녀 문현심 씨는 “아버지가 운보 선생님과 필담을 나누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문 작가가 ‘한국인’ 작업에 본격적으로 임한 데는 세계적인 초상 사진작가 유섭 카쉬(Yousuf Karsh)의 영향이 컸다. 오드리 햅번, 윈스턴 처칠 등 유명인의 초상을 통해 시대를 기록한 카쉬의 작품을 보며 그는 “나도 우리나라 한 시대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을 분야별로 정리해보고 싶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는 1998년 ‘영상의 해’를 맞아 전시를 준비하다 과로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그의 사진 인생을 정리하는 회고전이 열렸지만 ‘한국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전시는 2부로 나뉜다. 1층 전시장에는 미술인을 비롯해 문인, 방송인, 성악가, 정치인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인물 초상 180여 점이 걸렸다. 2층 전시장엔 초기 사진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담은 1964년작 ‘군동’은 유족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어린이들의 생명력과 활기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배어난다. 금빛 물감으로 터치를 거듭한 듯한 ‘석양’, 노출과 빛을 이용해 피사체를 몽환적으로 표현한 ‘기다림’에는 회화적 감성이 가득하다.

유족들은 문 작가의 작품을 기부해 그의 예술세계를 대중에게 알릴 계획이다. 문현심 씨는 “2023년 서울시가 개관하는 사진박물관에 아버지의 작품을 기부할 예정”이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졌던 아버지의 작품을 대중이 기억해주고 예술적 가치가 평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4월 5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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