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같은 김치의 세계적 인기에 고무돼있다. 한국의 전통식품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마냥 즐거워하기는 어렵다. 김치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산 김치'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중국에서 만든 값싼 김치가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 미국 김치용 배추 수출액 중국의 10분의 1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김치 수출량은 3만9748톤이었다. 전년 대비 1만120톤(34.1%) 늘었다. 수출 금액은 1억4451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역시 전년 보다 37.6% 많은 수치다.김치 수출이 급증한 것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세계 각국에서 김치가 건강식품으로 여겨진 결과다.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교의 쟝 부스케 명예교수 연구팀이 한국과 독일 등 코로나19 치명률이 낮은 국가들은 발효 음식을 먹는 식습관을 갖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한국의 김치와 독일의 사우어크라프트 등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K팝 등이 유행하면서 한식이 트렌디한 식사로 여겨지고 있는 점도 김치의 인기 요인으로 꼽혔다.
문제는 이같은 김치의 인기가 '한국산 김치'의 인기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미국김치에 사용되는 얼리지 않은 절인 배추의 최대 수입국은 중국이었다. 국제 무역 현황을 집계하는 '글로벌 트레이드 아틀라스'의 무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코트라는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한 2020년 1~5월 5769만달러 규모의 중국산 절인배추가 미국으로 수입됐다고 설명했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산 김치용 배추의 미국 내 수출 점유율은 24.3%에 달했다. 페루가 4967만 달러어치를 수출해 2위를 차지했다. 멕시코(1842만달러), 태국(1697만달러) 순이었다.
한국의 수출량은 578만 달러에 불과했다. 전년 동기간 보다는 34.6% 증가한 것이지만 순위는 9위에 그쳤다. 점유율은 2.4%로 중국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한국의 배추와 김치 가격이 중국보다 월등히 비싼 것을 고려하면 중량을 기준으로 한 점유율 차이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식당가뿐 아니라 한식을 좋아하는 해외의 식탁도 중국산 김치가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속도내는 중국의 김치공정
중국의 김치가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것은 저렴한 가격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내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중국 김치는 한국산 김치보다 50%가량 싸다. 최근 알몸배추 영상이 퍼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게 중국산 김치가 계속 많이 판매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도 가격경쟁력 때문이다.중국은 가격 경쟁력과 세계시장에서의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김치를 자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김치 공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가 파오차이를 김치의 표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지난해 국제표준화기구에 파오차이 기준을 등록한 후 김치의 원조가 중국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ISO가 김치와는 무관하다는 해석을 내렸지만 막무가내였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중국은 지난해 11월 절임 채소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국제표준 인가를 받았다면서 '중국의 김치 산업이 국제 김치 시장의 기준이 됐다. 한국은 굴욕을 당했다'는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오보를 통해 '김치공정'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종가집 등 국산 김치 기업이 중국에서 김치를 판매할 때 ‘파오차이’(泡菜)로 표기한 것이 도마위에 올랐다. 중국 식품안전국가표준(GB)에 따라 판매하는 모든 김치 제품에 '파오차이'라고 쓸 것을 강제해서다. 식품 기업들은 “중국의 제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파오차이라고 쓴 것”이라며 “김치라는 표현도 함께 병기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중국의 유명 유튜버가 김치를 담그는 영상을 올리며 중국의 전통식품이라고 주장한 것도 논란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중국의 김치 공정에 대해 말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 김치의 점유율을 높일 방법을 고민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대로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김치의 인기로 인한 과실을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