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올 2분기 전기요금을 22일 동결했다. 한전은 원유와 엑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라 ㎾h당 2.8원 올리려 했지만 정부가 나서서 주저앉혔다. 한 달 350㎾h의 전력을 사용하는 4인 가구의 경우 980원의 인상 요인이 생겼지만 동결됐다. 물가 상승 부담에 더해 내달 7일 재보궐선거를 앞둔 정치적 판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 1월 도입된 연료비연동 요금제가 시행 3개월 만에 유명무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급등한 유가에 빗나간 전망
지난해 12월 한전은 2021년부터 전기료를 연료비에 연동해 책정한다고 발표했다. 유가 등 에너지 가격 등락에 신재생에너지 보조금 비용 등을 반영해 전기료를 산출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2013년 이후 전기료 인상이 이뤄지지 않으며 발전비 증가가 전기료에 반영되지 않는 가격 결정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2024년 이후 크게 불어날 전망인 발전비용을 줄이려는 포석도 깔렸다. 발전비가 저렴한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이 줄고 LNG발전 비중이 높아지며 에너지 가격이 오르지 않더라도 발전비용 증가에 따른 한전의 손실 증가가 우려되기 때문이다.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를 연료비연동 요금제 시행의 적기로 판단했다. 정책 발표 시점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에 따른 수요 감소로 에너지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1분기에는 ㎾h당 3원, 2분기에는 ㎾h당 2원을 깎아줘 상반기에만 1조원의 전기료 부담을 덜어주도록 하겠다는 계획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올 1월 말부터 유가가 급등세로 바뀌면서 이 같은 정부 구상은 어그러졌다. 2분기 전기료는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평균 연료비를 기준으로 2020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평균 연료비가 얼마나 높거나 낮았는지를 기준으로 인상 또는 인하가 결정된다. 산업부가 2분기 연료비를 추계하던 지난해 12월에는 올 상반기 유가가 배럴당 44달러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하반기에도 배럴당 48달러 선을 유지해 전기료 인상은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작년 말 배럴당 49달러 안팎이던 유가는 2월 말 6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h당 2.8원이 인상돼 1분기 전기료 감면폭을 상쇄하고 지난해 말 수준으로 인상될 수밖에 없었다.
“연료비 연동제 불신 커져”
이에 기획재정부와 산업부는 유가와 LNG 가격 인상 영향을 2분기 전기료 산정 과정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제도 전환 당시 발표한 ‘단기간 내 유가 급상승 등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가 요금조정을 유보할 수 있다’는 조항을 활용한 것이다.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높아지고 있는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반영했다.기재부 관계자는 “최근 대파 등 농산물 물가 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은 유가 등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며 “전기료 인상은 제조업부터 서비스업까지 산업 전반의 비용 부담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지난 19일 “2분기 공공요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전기료 동결 방침을 밝혔다. 재보궐선거를 앞둔 가운데 국민 생활에 영향이 큰 전기료 인상을 결정하기는 어려웠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기료 동결 소식에 이날 한전 주가는 4.76% 급락했다. 전기료 인상 기대에 따른 지난 한 주간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한 것이다. 한전 안팎에서는 정부의 요금조정 유보권이 수시로 발동되며 연료비연동 요금제 시행이 크게 제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2011년에도 연료비연동 요금제 도입을 발표했지만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앙등 우려에 시행도 하지 못하고 2014년 5월 백지화한 전례가 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전기료 결정은 연료비연동 요금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입증할 중요한 변곡점이었다”며 “정부가 나서 전기료를 동결하며 정부와 연료비연동제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