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제도는 급속한 노령화에 대비하고 근로자의 퇴직금 수급권 보호를 위해 도입됐습니다. 15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적립금 규모면에서는 큰 성장을 이뤘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적립금 누계액은 252조원으로 국민연금 적립금 누계액(649조원)의 3분의 1에 달합니다. 이러한 규모와는 달리 기금 운용면에서는 제자리걸음입니다. 국민연금과는 달리 여전히 원금 보호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입니다.
1988년도에 도입돼 33년의 역사를 지닌 국민연금 기금은 자산의 장기적인 성장에 목표를 두고 대부분 투자자산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작년 말 기준 금융자산 투자 현황 발표 자료에 따르면 주식 44.3% ,채권 44.5%, 대체 자산 10.9% 비중입니다. 대부분 투자자산으로 운용함에 따라 금융 위기 상황에서는 대폭적인 수익률 하락을 겪기도 했지만 제도 시행 이후 지난해 말까지 연평균 누적수익률 6.27%를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퇴직연금은 소중한 노후자금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너무나 조심스럽게 다뤄져 왔습니다. 퇴직연금 시행 초기에는 1년제 정기예금 금리가 5%를 넘나들었고 투자 제한이 많아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원리금 보장형으로는 연 1% 수익률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고 투자 상품은 다양해졌습니다. 이처럼 시행 초기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90%에 가까운 자금이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복리 효과는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에 수익률 차이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가령 매월 동일한 금액을 30년 동안 적립한다고 가정할 경우 수익률이 연 1% 라면 적립 원금의 20%도 성장하지 못하지만 6% 라면 적립 원금의 2.8배로, 10% 라면 6배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금융자산 투자에 신경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2017년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입자가 운용 권한을 가지는 확정기여형(DC)의 경우 가입자의 91%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실상 퇴직연금은 방치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해 연금 선진국인 호주와 영국 등에서는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참고할 만 합니다.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에 대해서는 구체적 운용 지시가 없을 경우 '지정된 투자 상품'으로 자동 가입되게 하는 디폴트 옵션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귀한 자식이라고 오로지 보호만 하면 '과잉 보호'의 부작용이 크듯이
, 퇴직연금이 소중한 노후자금이 될 수 있기에 원금 보호에 초점을 맞춘다고 하면 정작 노후 생활에는 보탬이 되지 못하고 푼돈이 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연정 CFA 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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