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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위기의 승부사' 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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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위기의 승부사' 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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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통천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정주영은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서울의 한 쌀가게 점원이 됐다. 그는 밤새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며 무거운 쌀가마를 실어 날랐다. 그의 일솜씨에 감복한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은 뒤로는 신이 나서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그러나 일제의 쌀 배급제 단행으로 가게는 곧 문을 닫아야 했다.

다음에는 자동차 정비업에 나섰다. 빚돈으로 정비공장을 인수해 야심차게 출발했다. 하지만 개업 20일 만에 불이 나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자전거의 두 바퀴 인연과 자동차의 네 바퀴 인연이 다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때부터 정주영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 빚쟁이를 찾아간 그는 되레 신용을 담보로 돈을 더 빌려 달라고 사정했다. 그렇게 두 배의 빚을 진 그는 밤낮없이 일해 3년 만에 빌린 돈과 이자를 다 갚았다. 이를 바탕으로 광복 후 현대자동차공업과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낙동강 고령교 복구공사 때 급류와 난공사로 도산 위기에 몰렸을 땐 동생 집까지 팔아가며 복구를 마치고 신용을 회복했다. 조선소 건립이 벽에 부딪혔을 땐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400년 전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영국 금융회사를 설득해 차관 도입과 선박 수주에 성공했다.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에서 조선소 건립과 유조선 건조를 동시에 진행한 것도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역발상의 승리였다. ‘오일 쇼크’ 때 중동 진출 문제로 모두가 걱정하자 “사막이라 모래와 자갈이 널려 있고, 재료가 많으니 공기도 단축할 수 있다”며 결단을 내려 천금 같은 외화를 벌어왔다.

서산 간척지의 물막이 공사로 애를 먹었을 땐 고철 유조선을 가라앉히는 ‘정주영 공법’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경부고속도로를 세계 최단기간에 완공하고, 순수 국산 승용차 1호 ‘포니’를 만들 때에도 그의 승부사 기질은 빛났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겁내는 임직원들에게 했던 말 “이봐, 해봤어?”는 ‘정주영 정신’의 핵심 어록이 됐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그를 “창의력과 혁신 정신의 산증인”이라고 극찬하며 “앞으로 이런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모레(21일) 20주기를 맞는 정주영의 뒤를 이어 ‘세기의 도전자’들이 더 많이 나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신화를 펼치길 기대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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