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콘텐츠 시장에서 아동 및 자녀교육 관련 콘텐츠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육아 관련 책이 심심찮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 이를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부모들의 욕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할 수 있다.
이달 초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인 《수렵, 채집, 육아(Hunt, Gather, Parent)》는 서구 문화권에서 비롯된 기존의 자녀교육 철학과 최근 유행하는 육아관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고발하는 책이다.
이 책에선 “잘못된 육아 방식으로 인해 현대 사회가 너무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차별, 분노의 확산이 잘못된 육아 방법으로부터 비롯됐음을 일깨워준다.
《수렵, 채집, 육아》는 부모와 자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육아의 비결을 고대 문화권에서 찾고 있다. ‘세 살짜리 고집불통 독재자’이자 ‘통제 불가능한 골칫덩어리’ 딸과 심각한 갈등을 겪던 저자가 수렵 및 채집 문화권을 순례하며 자신의 자녀와 조금씩 화해하고,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과정이 펼쳐진다.
화학박사이자 미국공영라디오(NPR) 과학 저널리스트인 마이클린 듀클리프는 엄마가 되면서 이른바 ‘효과적인 육아(effective parenting)’에 대한 여러 논문과 책을 검토했다. 하지만 ‘현대적 육아법’에 대한 근거가 너무 불명확하고 오히려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자는 ‘정말로 효과적인 육아 방법’을 찾기 위해 멕시코 인근 유카탄반도의 마야 원주민 마을을 찾았고, 거기서 서구 문화권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을 발견했다. 그곳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지도, 심한 잔소리를 하지도, 타임아웃(자녀가 부정적 행동을 했을 때 일시적으로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 부모에게 접근 제한)도 하지 않았다. 부모와 자녀 사이는 늘 서로 친절하고 온화하며 평화로워 보였다. 저자는 이 경험을 계기로 서구 문화권의 육아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됐고, 이후 또 다른 고대 문화권을 방문하면서 육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저자는 마야 원주민 마을을 시작으로 북극 이누이트 원주민 마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하자베 원주민 마을을 차례로 방문하고, 각 지역 특유의 육아 비밀을 소개한다. 고대 문화권의 부모들은 서양 문화권 부모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녀와의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마야 부족 자녀들은 걷게 되는 순간부터 집안일의 공동책임자로 성장하며, 이누이트 부족 자녀들은 섣부르게 행동하기 전에 차분히 생각할 줄 아는 뛰어난 감성지능의 소유자로 성장한다. 하자베 부족의 자녀들은 용감하고 자신감 넘치는 자기주도적인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운다.
이 책은 연대감(togetherness), 격려(encouragement), 자율(autonomy), 최소 개입(minimal interference)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의 머리글자를 딴 ‘팀(TEAM)’ 육아 방법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며 “지금껏 우리가 믿고 있고, 알고 있던 육아 상식을 의심해 보자”고 제안한다. 오래된 지혜로부터 배우는 깨달음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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