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상장사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배당 확대와 같은 일반 이슈뿐 아니라 사내·사외이사 선임 등 지배구조와 관련된 안건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채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동학개미운동’ 여파로 개인 주주들이 대폭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1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미국계 헤지펀드인 스톤포레스트캐피털은 오는 26일 한국공항 주총에 주주제안으로 정관 일부 변경 안건을 올렸다. 이사회 내에 공정거래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주장이다. 2명 이상의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두고 모회사와 계열사 간 거래가 공정 가격 등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업무를 맡기자는 취지다. 한국공항은 화물과 승객 수하물 상·하역, 지상 장비 지원 등의 업무를 하며,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진에어에서 대부분의 매출이 나온다.
25일 열리는 석유 유통업체 중앙에너비스의 주총에는 주당 6000원 배당금 지급, 액면가 100원으로 액면분할, 자산재평가를 주총에서 결의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의 정관 일부 변경 안건이 주주제안으로 상정됐다. 중앙에너비스는 이번 주총에 주당 480원의 예정 배당금을 제시했다. 주주제안에서 제시한 배당금은 회사 측이 밝힌 배당금의 12.5배에 달한다. 중앙에너비스는 SK에너지와 대리점 계약을 맺고 휘발유·경유 등을 매입해 직영 사업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 밖에 전진바이오팜, 금화피에스시의 정기 주총에도 이사 선임과 자사주 소각 등을 다룬 소액주주들의 주주제안 안건이 상정됐다. 상장사는 지분 0.5% 이상(자본금 1000억원 미만은 1%)을 6개월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확산으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자산운용사 등 국내 기관투자가의 주주 활동도 거세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난 16일 SK네트웍스와 SKC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한 게 대표적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의도는 없지만 지배구조 개선이나 배당 확대, 자산 매각 등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제안을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가진 기관투자가가 일반투자 목적으로 해당 지분을 보유하려면 10영업일 안에 지분 변동 내용을 보고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현재 SK네트웍스 지분 7.38%, SKC 지분 10.51%를 갖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 회삿돈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이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지난 2월 아파트 건설업체 동원개발에 배당성향 확대 등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과거엔 배당 확대나 주가 부양 등에만 주주제안이 집중됐지만 최근 들어선 이사 선임이나 사업 구조 개편, 사명 변경까지도 다루고 있다”며 “소액주주들의 연대 가능성 등으로 상장사들이 직간접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2~28일 사이에 정기 주총을 개최하는 상장사는 1095개다.
김은정/김진성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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