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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참을 수 없는 민주주의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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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꾸준히 팔리는 게 믿기지 않는 책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1988년 한국어 초역 이후 읽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그런데도 이 사회가 날이 갈수록 이 지경인 게 더 신기한 소설. 그들은 대체 무엇을 읽은 것일까? 하긴 부동산 투기의 달인이면서 사회주의자인 척하는 이들이 우글거리는 ‘어느 나라’보다 괴상할 건 없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비롯한 체코 자유민주화 운동에 가담하던 쿤데라는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1975년 프랑스로 망명, 파리에 정착한다. 체코의 국민작가였던 그는 “작가로서의 조국을 프랑스로 정했다”면서, 1993년부터는 아예 프랑스어로 집필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체코어로 먼저 쓴 뒤에 작가가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해 1984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최초 출판됐다. 물론 우연일 뿐이겠지만, ‘1984’라는 상징이 내 눈에는 ‘어쩐지’ 운명처럼 보인다.

쿤데라 개인의 정치적 부침이 곳곳에 배어 있는 이 소설은 ‘가벼움’과 ‘무거움’을 상징하는 남녀 두 쌍을 주요 등장인물로 해 모순과 허망의 그물에 사로잡힌 세상에서 무거움을 거부하고 가벼움으로 살기를 지지하는 실존소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소설로 해석돼 왔다. 그러나 모든 좋은 문학작품들이 들어가는 문은 하나여도 나오는 문은 여러 개이듯 이 소설은 역설적으로 상당히 ‘래디컬한 반파시즘 정치소설’이기도 하다. ‘무거움’이란 쿤데라에게 ‘어두운 것’이고, 이념과 정치는 ‘무겁고 어두운 것’이며, 여기에 중독된 ‘무겁고 어두운 인간들’이 그릇된 정치이념을 통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 그는 이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들끓는 체코의 현대사 속에서 사랑 이야기로 승화시킨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오작동이 감지되고 있다. 공산주의의 역사적 실험이 실패로 증명된 것처럼 민주공화정의 타락으로 자유시장경제가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만큼. 파시즘은 사회과학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숙주 삼은 비합리적이고 무정형인 에너지에 가까운 전염병이다. 기껏 사라졌는가 하면, 어느새 변종을 만들어 창궐한다. 이에 유일한 백신은 인간이 ‘진정한 자유’에 집중하며 크건 작건 언제나 주의를 요하는 수밖에는 없고, 그것을 쿤데라는 ‘무겁지 말고 가벼운 실존을 유지하라’라는 충고로 속삭인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불가능은,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정확하지 않은 용어 사용에서 기인한다. 아시아의 근대개념어 대부분은 일본인들이 번역한 것이다. 잘한 번역의 최고로 나는 ‘철학(哲學)’을 들고 싶고, 나쁜 번역으로는 ‘민족국가’와 ‘민주주의’를 들고 싶다. 일본인들은 ‘국민국가(nation-state)’의 ‘네이션’을 ‘민족’으로, ‘Democracy’를 ‘민주제도’가 아니라 ‘민주주의’로 오역했다.

민주주의는 그저 방법론이다.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고, 언제든지 다양한 파시즘들을 호출할 수 있다. 민주제도를 민주주의로 착각 신봉하고 나면, 좌익 우익 파시스트들은 이것을 이용해 ‘자신들만 즐거운 지옥’을 건설한다. 쿤데라 식으로 표현하자면, 민주주의는 ‘무거운 것’이고 민주제도는 ‘가벼운 것’일 게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광신도가 아니라 민주제도의 감시자가 되어 정치적 우상을 파괴하고 스스로 파시스트를 면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인간의 필요악이니 계속 경계하고 그들이 우리의 거울이라는 반성을 해야 한다. 제도의 타락에 대한 믿음은 치유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용어만 바로잡아도 우리는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고, 한 사람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무지개처럼 다양할 수 있다. 이 참을 수 없는 민주주의의 괴로움을 어찌할 것인가. 쿤데라는 체코 총리가 직접 찾아가 설득한 끝에 2019년 40년 만에 체코 국적으로 복귀했다. 그는 세상의 희망을 본 것일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소리치는 아이를 군중이 잡아 죽이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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