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운동 선수들의 두뇌 속 비밀’을 한경 독자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티 샷은 왜 유독 힘들까, 그늘집 막걸리는 스코어에 도움이 될까 등 평소 골퍼들이 가진 호기심에 대한 닥터 윤의 심리학적 처방전을 통해 올 시즌 ‘필드 위 멘탈 대결’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골프 팬 사이에선 지난 12일 TPC 소그래스에서 개막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화제였습니다. 안병훈 선수가 ‘마의 파3’로 불리는 17번홀에서 공을 물에 네 번 빠뜨리고 11타(+8)를 적어냈으니까요. 더 놀라웠던 건 안 선수의 11타가 이 홀 역대 최다 타수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2005년 밥 트웨이는 공에 홀을 넣기까지 무려 12타를 쳐야 했습니다.
이 홀에서 유독 선수들의 잦은 실수가 나오는 원인을 분석하자면 코스를 둘러싼 갤러리, 딱딱한 그린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홀이 파4나 파5로 세팅된 그린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이 대회 17번홀 티샷 위치가 드라이버를 친 후 세컨드 샷 지점이었다면 말이죠. PGA 투어 대회장엔 파3 외에 파4, 파5홀에도 아일랜드 그린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선수 실수는 유독 17번홀처럼 파3로 세팅된 곳으로만 몰립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골퍼는 파3의 티 샷을 앞두고 거리가 긴 파4 또는 파5보다 훨씬 더 큰 정신적 압박을 느낍니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파3는 샷 기회가 한 번뿐이기 때문입니다. 파4나 파5는 실수하더라도 다음 샷에서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파3에선 한 번 실수하면 망친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마련이죠.
이런 현상은 일시적으로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무대 공포증’과 연관이 있습니다. 무대 공포증은 남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공연할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긴장과 불안으로 인해 누구나 느낍니다.
무대 공포증의 무대(stage)는 ‘주목받는 모든 상황’을 의미합니다. PGA 투어 선수들은 거의 모든 샷에서 무대에 서 있는 셈이죠. 관중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지기도 하고 결승전 같은 중요한 순간에 너무 긴장해서 어이없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무대 공포증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등에서 오는 왜곡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퍼팅에서 실수하면 끝이라는 ‘파국적 결과’를 예상하는 순간, 불안감이 시작되는 거죠. 경쟁자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자신에게 주는 순간,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켜본다고 해서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고 걱정할 때 무대 공포증은 더욱 커져 결국 우리를 삼키게 됩니다.
통제할 수 없는 실수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공을 그린 위에 올리기’ ‘토핑·뒤땅 치지 않기’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에 집중할 때 우리는 무대 공포증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윤동욱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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