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소셜커머스 서비스로 시작해 e커머스(전자상거래)로 치고 나갔다. 서비스 초기에 이용자들은 로켓배송, 새벽배송에 놀라고 신기해하다 얼마 후엔 오래된 일상처럼 받아들였다. 쿠팡의 다음 목표인 전국 당일 배송으로 삶의 방식이 또 한 번 바뀌게 될 것 같다.
지난해 한국 e커머스 시장점유율로 네이버쇼핑(17%)에 이어 2위인 쿠팡(13%)이 11일 미국 뉴욕증시(NYSE)에 주식을 상장했다. 공모가 기준 쿠팡의 기업가치는 630억달러(약 71조80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쿠팡 하나의 기업가치도 놀랍지만 덩달아 이런 큰 회사를 키워낸 국내 유통 생태계의 가치도 커진 셈이다. 쿠팡은 소비자 만족은 물론 그에 맞는 생산자를 발굴해 끊임없이 생태계를 키워왔다. 이번 상장은 그 생태계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쿠팡의 상장은 한국 유니콘의 글로벌 자본시장 공식 데뷔라는 의미도 있다. 유니콘은 창업 10년 이하로 1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 비상장 기업을 말한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유니콘의 숫자가 그 나라 기업 여건을 말해준다. 쿠팡은 한국 스타트업의 성장 공식을 만들고 있다. 스포츠 세계에 ‘박세리 키즈(kids)’ ‘박찬호 키즈’가 있듯이 스타트업에도 ‘쿠팡 키즈’가 나올 수 있고, 나와야 한다.
유니콘은 온실에는 없다. “적자가 엄청나던데 내년엔 어떻게 될지 몰라” 하고 이용자들이 걱정해주는 회사가 쿠팡이었다. 새로 생긴 편리한 서비스가 없어지면 안 되니까.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대표 시절 “소비자가 점점 더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쿠팡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쿠팡은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로 초창기 구글을 키운 미국 세쿼이아캐피털에서 1억달러를 투자받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3억달러도 받았다. 창업 4년에 이처럼 막강한 곳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큰 자산이다. 쿠팡이 누적적자로 고생할 때 10억달러, 20억달러를 수혈해준 곳은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였다.
적자에 신음하는 국내 벤처가 국내 어떤 금융회사나 벤처캐피털, 펀드에서 ‘조 단위’의 돈을 빌릴 수 있을까. “쿠팡에는 해외자본뿐”이라고 삐딱하게 볼 게 아니라 국내 자본이 끼어들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해야 한다. 한국에는 벤처에 쏴줄 조 단위의 자금, 기업 전략을 알아보는 눈, 장기간 간섭하지 않을 인내심 모두 부족하다.
외국자본이 한국에서 회사를 차려 소비자가 반기는 서비스를 하고 고용을 늘리고 세금을 낸다면 환영할 일이다. 코로나19까지 겹쳐 고용 사정이 더 나빠진 지난해 쿠팡은 2만5000명을 채용해 고용 규모 톱3에 올랐다. 창업기업을 키워 고용을 늘리는 일이야말로 훈장감이다.
쿠팡의 성장 스토리는 곧 투자 스토리다. 지난 10년간 투자받은 약 3조원의 돈으로 국내 전 지역을 익일 배송 권역으로 만들었다. 5만 명 이상을 고용했고, 수십만의 소상공인에게 상품을 팔 기회를 줬다. 상장으로 확보하는 자금도 국내에서 ‘전국 당일 배송’을 위한 풀필먼트(fulfillment)센터 추가 투자와 고용, 그리고 새로운 서비스 투자에 쓸 것으로 보인다. 쿠팡의 지난 행보를 볼 때 뉴욕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한 쿠팡은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사업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한국에서는 유통·물류의 세계대전이 시작될 분위기다. 글로벌 초강자 아마존이 SK텔레콤의 자회사 11번가의 지분 약 30%를 인수해 한국에 본격 진출한다. 세계 2위 알리바바의 물류계열사 차이냐오(菜鳥)도 한국 진출을 발표했다. 온라인 업체에 시장을 빼앗긴 국내 오프라인 강자들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쿠팡이 만들어놓은 e커머스 생태계를 지키려면 아마존과 알리바바의 공략을 저지해야 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쿠팡을 보고 있을 때 쿠팡은 저 멀리 있는 아마존과 알리바바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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