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남편이나 애인 등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최소 97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사건에서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97명이라고 8일 발표했다.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 남은 여성은 131명으로 집계됐다. 피해 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경우는 최소 57명에 달했다.
범행 동기는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했다’가 53명(23.3%)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홧김에, 싸우다가’ 등 우발적 범행(52명·22.8%),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34명·14.9%), ‘자신을 무시했다’(9명·3.9%), ‘성관계를 거부했다’(6명·2.6%) 등이 뒤따랐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스스로 피해자라는 것을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입을 모았다"며 "애인이나 가족 등의 폭력은 ‘사랑 싸움’이나 ‘애정 표현’으로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법부가 가해자의 폭행 정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해자가 여성의 신체를 만지려다 거부당하자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대표적이다. 가해자는 범행 일주일 전부터 흉기를 구매해 가방에 넣어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1심보다 5년을 감형한 판결을 내렸다. “범행에 사용된 칼이 정육점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고 취업하면 사용하려고 샀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언론에 보도된 가까운 사이의 남성에 살해당한 여성 피해자는 최소 1072명"이라며 "정부가 공식 통계조차 내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관련 법체계를 점검하고 지속적인 실태조사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