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통한 원주역, 수인선 오목천역 등에 ‘Kiss & Ride’의 약자인 ‘K&R’이 발견됐습니다. 새로 생기는 역에 뜻 모를 ‘Kiss & Ride’를 설치해 시민들이 이용하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 발생한다면 행정적인 차원에서도 낭비일 것입니다.” 우리말 운동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가 지난 1월 철도 관련 정부 산하기관에 공문을 보냈다. 도무지 뜻 모를 ‘Kiss & Ride’라는 표시물을 없애달라는 취지에서다.
뜻 모를 외국어 그대로 사용…소통에 지장 줘
이 단체는 몇 년 전에도 한글날을 앞두고 서울시민을 상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외래어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굿닥(비상약 보관함), BRT(급행버스체계), Kiss & Ride(마중주차) 등이 ‘시급히 바꿔 써야 할 안전용어’ 1~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수년간의 노력에도 개선되는 기미가 잘 보이지 않자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철도역의 표지판이나 길바닥에 쓰인 ‘Kiss & Ride’(K&R)는 요상한 말이다. 보통은 외래어(외국어)가 들어오더라도 이렇게 원어가 통째로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이 말은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마중(또는 배웅)할 때 잠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키스’는 아마도 우리와는 다른, 서양의 문화 때문에 들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한글문화연대는 ‘배웅정차장’이나 ‘환승정차구역’ 정도를 대체어로 제시했다.
흔히 외래어 남용(남발)이라고 싸잡아 말하지만, 들여다보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어렵고 낯선 말을 사용하는 경우다. ‘Kiss & Ride’ 또는 ‘K&R’ 같은 게 그렇다. 이런 말은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으로 보면 ‘잡음’에 해당한다. 정치기사 등에서 볼 수 있는 ‘타운홀 미팅’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미국에서 유래한 말로, 정치인이 지역구 주민을 초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비공식적 회의를 말한다. 우리에겐 문화적으로도 낯설고 용어 자체도 익숙지 않다. ‘격의없는 대화 자리’ 식으로 풀어 쓰는 게 독자를 배려하는 글쓰기다.
정겨운 우리말 찾아 쓰면 표현 더욱 풍부해져
다른 하나는 익숙한 말이지만 어색한 경우다. 일상에서 나타나는 ‘외래어 남발’ 현상은 대개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말에 영어가 너무나 폭넓게 스며들어 있어 잘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다. 가령 ‘(가게를) 열었다’고 하면 될 것을 ‘오픈했다’고 한다. ‘1위에 올라’라고 하면 그만인데 ‘1위에 랭크돼’ 식으로 말한다. ‘셀프 위로하면~’이라고 하지 말고 ‘스스로 위로하면~’이라고 하면 충분하다.외래어뿐만 아니라 한자어도 마찬가지다. 어느 사회복지관에서 연 바자회 안내문에는 ‘행복나눔바자회를 실시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냥 ‘바자회를 연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실시한다’라고 해야 그럴듯해 보이는 모양이다. ‘일을 도모하고’보다 ‘일을 꾀하고’라고 하면 표현이 훨씬 살갑고 정겹다. ‘~에 위치한’ 대신 ‘~에 있는’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무조건 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지나치게’ 쓰지 말라는 얘기다. 외래어든 한자어든 남발하면 글의 흐름이 어색해진다.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글의 품격도 떨어뜨린다. 그러면 ‘남발’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말로 쓸 수 있는 것을 굳이 외래어로 쓴 경우’다. 한눈에 봐서도 표현이 어색하기 때문에 모국어 화자라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말 대체어가 있으면 굳이 외래어를 쓸 필요가 없다. 적절한 우리말 표현을 찾아 쓰는 게 세련된 글쓰기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