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실물경제 흐름이 불투명한 만큼 기준금리를 올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인플레이션과 증시 과열 우려가 커진 만큼 ‘출구전략’에 나서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찬바람이 도는 실물경제를 고려할 때 주식시장의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로 유지했다.
"기준금리 인상, 언급할 때 아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0.5%로 동결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불확실성이 높으므로 기준금리 인상을 언급할 상황이 아니다”며 “경기가 안정적 회복세를 보일 때까지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플레이션 조짐에 따라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억눌린 소비가 짧은 시기에 분출하는 ‘펜트업(pent-up)’ 효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면서도 “소비자물가 수준이 1%대로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3%로 제시해 종전(1%)보다 0.3%포인트 올려 잡았다. 하지만 한은의 물가 목표치(2%)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 총재는 시장금리가 오름세를 보이는 데 대해서는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국고채 공급이 늘어나는 등 수급 우려가 커진 데다 경기개선 기대도 작용하면서 미국 장기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며 “미 장기금리 상승이 한국 장기금리에도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지난 24일 연 1.381%에 마감하며 지난해 2월 23일(연 1.473%)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10년물 국고채 금리도 지난 22일 연 1.922%로 지난 2019년 4월 23일(연 1.923%) 후 가장 높았다.
장기채 금리가 올라가면서 증시를 비롯한 자산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총재는 “시장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가계·기업 자금조달 금리가 상승하고 자산가격도 조정 압력을 받게 된다”며 “앞으로 상황 전개에 따라 증시의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장금리 안정화를 위한 국채 매입에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 총재는 “장기 시장금리가 불안해질 때 국채 매입을 해왔다”며 “필요하면 국채 매입 시기와 규모를 사전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한은이 곧바로 인수하는 ‘국채 직매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는 “직매입을 하면 ‘정부 부채의 화폐화(중앙은행이 정부 부채를 떠안는 것)’ 논란이 일어나고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가 불거지고, 신인도가 하락할 것”이라며 “한은이 국채를 직접 인수하도록 규정한 한은법 75조의 존치 여부를 논의할 때”라고 말했다.
올해 민간소비 2% 전망
한국은행은 이날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3%. 2.5%로 내다봤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전망치 그대로다. 한은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민간소비의 증가율을 종전 3.1%에서 2%로 하향 조정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이어지면서 가계 씀씀이가 불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과 카페, 도소매 등 대면 서비스업에 찬바람이 불면서 전체 고용여건도 부진할 전망이다. 취업자 수는 지난해 22만명 줄어든 데 이어 올해는 8만명 늘어나는 데 그칠 전망이다. 올해 취업자 수는 공공부문 80만∼100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난 것을 반영한 수치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민간부문의 일자리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출과 설비투자가 선전하면서 민간소비 부진을 일부 상쇄할 전망이다. 한은은 올 상품수출 증가율을 종전 5.3%에서 7.1%, 설비투자 증가율은 4.3%에서 5.3%로 상향 조정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업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늘면서 수출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한 설비투자가 불어난 결과다.
한은의 이날 경제전망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올해 중후반 이후 진정된다는 ‘기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진정 시점이 내년 초중반으로 늦춰지는 ‘비관 시나리오’에서는 올해 성장률이 2.4%로 낮아질 것으로 봤다. 코로나19가 올 초중반 진정 되는 ‘낙관 시나리오’에서는 올해 성장률은 3.8%로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