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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살처분'의 살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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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도 아니고 아침저녁 밥 멕여 기른 가축이에요. 3주 잠복기가 끝나 감염 위험도 없는데 살아 있는 닭을 무조건 죽이라니, 거 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지난해 11월 이후 전국의 닭·오리 2808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하루 평균 20만3400마리다.

병에 걸린 것보다 ‘예방적 살처분’으로 매몰당한 게 훨씬 더 많다. 예방적 살처분 기준이 과거 AI 확진 농가 반경 500m에서 2018년 3㎞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양계농가들은 “수평 전파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올해 AI 양상은 수직전파인데도 마구잡이로 죽인다”며 “살처분 현장이 얼마나 지옥 같은 살풍경인지 책상물림들은 모를 것”이라고 항변한다.

살처분 정책은 16세기 유럽에서 우역(牛疫) 전염병이 퍼진 뒤 영국이 법제화한 것이다. 지금은 영국에서도 비과학적이란 비판이 거세다. 영국과 북해를 사이에 둔 낙농국가 네덜란드에서는 살처분 대신 예방 백신으로 이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고 있다. 전염병이 발생해도 감별백신으로 병에 걸린 가축을 골라낸 뒤 치료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물 백신 도입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2010~2011년 소·돼지 구제역 사태 때 정부가 백신을 도입하겠다고 하자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백신 맞은 고기를 누가 사 먹겠느냐는 것이었다. 닭·오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살처분의 원흉이 된 우역이 백신을 통해 종식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011년부터 소·돼지에 대한 백신 접종이 상시화됐다. 이후 구제역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살처분 규모는 획기적으로 줄었다. 이를 근거로 AI에도 백신을 상시 접종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들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돌연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까지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지금처럼 잔혹한 살처분은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정부가 앞으로 2주간 살처분 범위를 반경 3㎞에서 1㎞로 줄이기로 했다. 농가 피해가 크고 달걀값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자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이를 두고 “가축뿐 아니라 사람도 변이 바이러스 문제에는 한계를 똑같이 안고 있다”며 “이제라도 동물 백신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대응법이 무차별적인 ‘거리두기’와 영업 제한 등 탁상공론에서 나왔다는 비판과도 상통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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