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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프리즘] 홍 부총리, 직을 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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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 관가만큼 딱 들어맞는 곳도 없다. 특히 차관급 이상 정무직 공무원은 이른바 관운이란 게 전부다. 하필 그 타이밍에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미끄러지거나, 정반대로 운 좋게 발탁되는 케이스가 허다하다. 기자가 목격한 것 중에서는 전직 경제수석 C씨가 가장 드라마틱했다. 관가에서도 천재로 소문난 그는 청와대와 내각 개편인사 당일 하루 동안 운명이 세 차례나 뒤바뀐 끝에 결국 집으로 갔다. 관운이 이런 거구나, 실감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확실히 관운을 타고난 사람이다. 사실 그는 기획재정부 시절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행시 동기(29회) 중에 내로라하는 에이스들에 밀려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그나마 뒤늦게 대변인을 한 것이 기회가 돼 정책조정국장을 맡았지만 그게 다였다. 기재부 내부에서도 행시 29회 가운데 장관이 나온다면 C나 S를(한 명은 민간으로, 한 명은 국회로 진출했다) 꼽는 이가 다수였지, 그를 점찍는 이는 없었다.

그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박근혜 정부 인수위(국정자문위) 때였다. 경제1분과 정부 측 인수위원으로 파견된 그는 당시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장 눈에 들어 청와대로 발탁됐고, 정권 핵심인사가 꿰차는 자리(기획비서관)를 ‘늘공’으로선 드물게 3년 내리 맡았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중간에 예산실장으로 기재부 복귀를 희망했지만 행시 동기 S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권 말년에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으로 이동해 청와대 ‘순장조’에서 벗어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다 정권이 바뀐 직후 새 정부 요직인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됐다. 정권 교체 후 재기용된 유일한 정무직이었다. 그는 진가를 알아봐주는 주군까지 만나게 된다. 이낙연 전 총리(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부하직원들에게 추상같기로 유명한 이 전 총리도 당시 홍 실장에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번은 직원들 앞에서 “노래 가사를 못 외우는 이유가 노래방기기 때문이고, 전화번호를 기억 못 하는 이유가 휴대폰 때문인데, 요즘 내가 공부를 게을리하는 이유는 홍남기 때문”이라는 얘길 했다고 한다. 보고서를 워낙 완벽하게 써오니 공부를 안 하게 된다는 농담이었다.

이 전 총리는 특히 홍 실장의 성실함과 빈틈없는 일처리를 높이 샀다고 한다. 매주 월요일 대통령과의 오찬회동 때마다 그를 배석시켜 대통령에게 세일즈를 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가 청와대와의 불협화음 끝에 낙마하자, 그를 후임 부총리로 천거한 이도 이 전 총리였다.

그런 홍 부총리가 지난주 이낙연 대표의 재난지원금 연설에 반기를 든 것은 매우 뜻밖이었다. 그동안에도 여권과 부딪치면서 종종 자기 목소리를 냈지만, 번번이 물러나 ‘홍백기’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던 그다. 반기를 든 속내가 뭔지는 알 수 없다. 재정당국 수장으로서 더 이상 밀리면 안 되겠다는 뜨거운 피가 끓어올라서였는지, 아니면 그동안 기재부 내부에 쌓인 불만을 달래기 위해 연출한 건지 모를 일이다. 주변에선 과거와는 다른 결기가 느껴진다고 하지만, 그가 정말로 직(職)을 걸고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홍 부총리는 성실함과 우직함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가 부총리로 발탁된 것도 정부의 국정철학을 충실히 이행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홍 부총리는 인사권자의 의지에 부합하기 위해 지난 2년 넘도록 충견처럼 일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대통령의 충복으로 남을지, 국민의 공복으로 기억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가 소신을 버리고 또 백기를 든다면, ‘최장수 부총리’라는 기록은 남겠지만 ‘재임 중 국가부채를 260조원(역대 최대기록)이나 늘린 기재부 장관’이란 불명예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이다. 장관직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중요하다. 잘 내려가야 오래 기억된다.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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