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5월 서울 종로1가 음악감상실 ‘세시봉’. 강국진(1939~1992)과 정찬승(1942~1994)이 25세의 풋내기 화가 정강자(1942~2017)의 알몸에 투명 풍선을 달고 이를 터뜨린 뒤 무대에서 퇴장했다. 국내 최초의 누드 퍼포먼스로 기록된 ‘투명풍선과 누드’는 당시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다. 몸으로 자유를 표현하며 파격을 몰고다니던 강국진은 1970년대 후반 돌연 ‘긋기’에 집중했다. 모든 그리는 행위가 선에서 시작된다고 깨달으면서였다.
한국 최초의 행위예술가이자 테크놀로지 아티스트였던 강국진의 회화와 판화를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회현동 금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오마주! 강국진-‘온고’와 ‘지신’ 사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강국진의 예술정신을 한 단어로 압축하고 있다. 서구 양식을 비판 없이 차용했던 기성 화단의 관습을 해체하고 실험적인 도전에 나선 그의 예술세계야말로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온고지신의 실천인 셈이다.
강국진은 미술계 주류와 거리를 두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했다. 1971년 국내 최초로 판화 공방을 마련해 판화 보급에 앞장섰고 집단창작 스튜디오도 도입했다. 천, 노끈, 밧줄, 골판지 등을 활용한 입체·설치 작업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도 선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읽을 수 있다. 죽죽 내리그은 선은 다양한 굵기와 컬러의 변주를 통해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선보인 ‘가락’ 연작이 대표적이다. 세밀한 선과 컬러의 변주는 빛의 일렁임을 잡아내는 듯 감각적이다.
회화 유작인 1991년 작품 ‘역사의 빛’(사진)은 마지막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작가의 예술정신을 보여준다. 원색의 굵은 선이 뒤섞이며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가는 선 위주였던 이전의 날카롭고 세밀한 느낌에서 한 번 더 변신을 시도했다.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는 “강국진은 행위예술과 실험적 미술을 통해 ‘온고’와 ‘지신’ 사이를 오가며 기성 화단에 대한 비판적 물음으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모색했다”며 “실험적 정신을 또 하나의 예술적 변모의 과정으로 승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오는 18일까지 열리는 1부 전시에서는 유화, 수채화, 파스텔화 등의 회화를 보여주고 다음달 2~25일 열리는 2부에서는 판화를 소개한다. 이달 말 강국진의 미술사적 의의를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도 열린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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