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라임·디스커버리 등의 '부실펀드'를 판매한 책임을 물어 기업은행 전직 행장에게 주의적 경고 상당의 경징계를 결정했다. 당초 중징계 가능성을 사전 통보했으나 최종 수위는 낮아진 것이다.
금감원은 5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기업은행에 대해 업무 일부정지 1개월, 과태료 부과를 금융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기업은행이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등을 위반했다고 결론내렸다. 펀드 판매 당시 기업은행 수장이었던 김도진 전 행장에는 주의적 경고 상당, 전직 부행장에 대해서는 감봉 3개월 상당을 건의하기로 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는 주의→주의적 경고→문책 경고→직무정지→해임 권고 순으로 강력하다. 문책 경고 이상부터는 중징계로 분류돼 향후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금감원은 제재심에 앞서 김 전 행장에게 문책 경고 상당의 징계안을 사전 통보했지만 이날 한 단계 수위가 내려갔다.
제재심은 금감원장의 자문기구로, 이곳의 결정이 법적 효력을 갖지는 않는다. 심의 결과는 이후 금감원장 결재, 증권선물위원회 심의, 금융위 의결을 통해 최종 확정된다.
기업은행은 2017∼2019년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의 '디스커버리 US 핀테크 글로벌 채권펀드'와 '디스커버리 US 부동산 선순위 채권펀드'라는 상품을 각각 3612억원, 3180억원어치 팔았다. 그러나 미국 운용사가 펀드 자금으로 투자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현재 각각 695억원, 219억원이 환매 지연된 상태다.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불러온 라임자산운용의 '라임 레포 플러스 9M'도 294억원 판매했다.
기업은행과 마찬가지로 부실 펀드를 팔았다가 금감원 제재심을 앞두고 있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에 이날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게 '직무 정지 상당', 진옥동 신한은행장에게 '문책경고'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사전 통보했다. 손 회장은 펀드 판매 당시 우리은행장을 맡고 있었다. 실제 징계가 이대로 내려진다면 손 회장과 진 행장은 연임에 제동이 걸린다.
김 전 행장의 제재 결과가 공개되자 금융권에서는 다른 최고경영자(CEO)의 징계 수위도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다만 신한·우리은행은 디스커버리펀드보다 사회적 파장이 더 컸던 라임펀드를 집중적으로 팔았다는 점에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신한·우리은행에 대한 금감원 제재심은 이달 25일로 예정돼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