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대학살)’로 상징되는 잔혹했던 나치즘은 일반적으로 아돌프 히틀러와 소수 추종집단의 악행으로 인식된다. 밀턴 마이어(1908~1986)가 1955년 출간한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이런 상식에 반기를 들며 나치즘과 현대사 이해의 폭을 확장시킨 저작이다. 미국 언론인 겸 교육가였던 마이어는 독일인 나치전력자 10명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나치즘은 무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한 악마적인 소수의 독재가 아니라 다수 대중의 동조와 협력의 산물이었다”고 진단했다. 많은 독일인이 원했고, 또 참여했던 열광적인 대중운동이었다는 설명이다.
“평범한 다수의 침묵과 권력 편승이 나치즘과 세계대전의 비극을 부른 ‘역사의 범죄’가 되고 말았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 참관 후 1963년 펴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기한 ‘악의 평범성’ ‘무(無)사유’와도 깊이 맞닿아 있는 인식이다.
목수, 고교생, 빵집 주인, 교사, 경찰관 등 ‘버젓한 사람들’이 도대체 왜, 어떻게 나치가 됐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에 가담했던 10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대중의 무관심이 부른 오욕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위기의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방관자와 나치 동조자들의 생각을 꼼꼼히 추적해냈다.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나치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평가받는 이유다.
“대다수 독일인은 나치즘의 공범”
인터뷰에 응한 10명의 나치 전력자는 겉보기에 선량하고, 가정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다수 독일인은 나치즘의 피해자가 아닌 공범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한 판단”이라고 마이어는 강조한다. 당시 독일 인구 7000만 명 중 100만 명이 전횡을 휘두른 배후에는 6900만 명의 동의와 참여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대다수 독일인은 히틀러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나치의 정책을 지지해 그들에게 권력을 안겼으며, 반(反)유대주의 선동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10명의 나치가 밝힌 나치당 가입 이유는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나치야말로 독일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고 봤고, 다른 사람은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해, 나치를 개선하기 위해 나치당에 들어간 이도 있었다. 마이어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실제로는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내린 비겁한 선택이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나치당원에게는 철저한 보상이 주어졌고, 이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는 주장이다. 실제 한 소방대원은 “시장과 상관도 나치이고, 간부도 나치 중에서만 선발되는 것을 보고는 입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한 교사도 교원 후보자이던 8년 동안 승진에 실패해 나치에 가입했고, 곧바로 정교원이 됐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학교 선생님 35명 중 5명만 나치였지만, 어느새 나치당에 입당하지 않은 사람이 5명에 불과했다.”
지독한 패전 후유증을 겪으면서도 “히틀러가 잘못했지만 잘한 부분도 많다”며 여전히 두둔하는 나치 전력자 역시 적지 않았다. 마이어는 “나치가 언론 조작을 통해 신뢰를 확산시키고 자신들의 폭정은 철저히 은폐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바깥세상으로는 시선을 돌리지도 귀 기울이지도 않는 폐쇄적인 태도가 비극을 불렀다”는 설명이다.
“선한 다수의 침묵이 광기의 사회 불러”
그러면서 자신의 안위에 갇힌 평범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에 주목했다. 선한 다수는 그저 무난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욕망에 부패와 범죄의 동조자가 됐고, 그런 침묵이 광기의 사회를 불렀다는 진단이다. “자신들의 안위에 파묻혀 연대의 미덕도, 사태를 직시하려는 의지도 말살돼 버렸다.”
요즘 한국에서도 회자되는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시 ‘처음 그들이 왔을 때’도 이 책에 실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중략)/이어서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이어서 그들이 내게 왔을 때/내 곁에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이어는 니묄러의 시를 인용하며 권력의 일탈과 타락을 방관하는 것은 ‘범죄’라고 강조했다. 다수 독일인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에 침묵한 탓에 탄압의 범위가 점차 넓어졌고, 이는 파시즘 지배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나치의 강압에 순응했던 한 공학자는 “만약 내가 충성선서를 거부했다면 수천, 수만 명의 거부로 이어져 나치는 권력 장악에 실패했거나 전복됐을지 모른다”는 깊은 회한을 내비쳤다.
이 책은 “나치는 독일이라는 특정한 곳, 특정한 시기, 특정한 인물이 아닌 인간 전체에게 해당하는 문제”라고 결론짓는다. 침묵과 암묵적 동의는 광기의 피바람을 부르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또 다른 히틀러가 탄생할 것이란 경고다. “국가는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인간이 어떠한지에 따라 국가가 어떠한지가 결정된다.”
백광엽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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