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미국 테너 마리오 란자(1921~1959)는 전도유망한 성악가였지만 큰 오페라 무대에 서기 전에 영화계부터 진출했다. ‘위대한 카루소’(1951), ‘황태자의 첫사랑’(1952)이 큰 성공을 거뒀고, 노래 실력도 세계적 테너들과 견줄 만했다. 하지만 대중 스타로서의 스트레스는 폭식과 폭음으로 이어졌다. 란자는 영화계를 떠나 이탈리아에서 뒤늦게 오페라 가수의 경력을 쌓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미 크게 손상된 건강 탓에 38세의 한창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란자의 음악성에 대해서는 폭발적 가창과 감미로운 표현력에도 불구하고 기품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한 의도적 구사였을 것이다. 그를 지켜본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등도 그 재능만큼은 격찬했다. 지난 일요일(1월 31일)이 란자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유형종 < 음악·무용칼럼니스트 (무지크바움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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