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에이알은 국내 시장점유율 30~40%가량인 국내 1위 항온항습기 제조회사다.
물류 사고가 사업 계기
국내 항온항습기 시장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과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다. 1981년 에이알을 설립한 한승일 회장(사진)은 당시 항온항습기 유지보수 업무만 했다. 그가 제조업계에 뛰어든 것은 1983년 삼성전자 수원공장에서 수입한 미국산 항온항습기의 물류 사고가 계기가 됐다. 갑작스러운 운송 차량 전복 사고로 미국산 항온항습기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되자, 삼성전자는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인 한 회장에게 SOS를 쳤다.그는 서울 구로동 공구상가와 일본 도쿄 전자상가를 오가며 부품 조달에 나섰다. 밤샘 작업 끝에 제품 메뉴얼만 보고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냈다. 한 회장은 “이 정도면 충분히 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제조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1985년 뱅크오브아메리카 서울지점에 첫 제품을 납품했다.
에이알의 주요 납품처는 삼성 SK LG 롯데 포스코 신세계 KT 등 대기업과 은행 보험사 증권사, 그리고 IBM 마이크로소프트 GE 지멘스 필립스 휴렛팩커드 소니 등 글로벌 기업이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병원 수술실을 비롯해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촬영실 등에서도 수요가 커졌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에 모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엔 박물관, 문서보관소, 와인저장고, 식품 가공공장 등으로도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에이알은 설립 후 지난해까지 40년간 영업이익 흑자를 거듭했다. 지난해에도 매출 700억원을 올렸다. 전년(600억원)보다 16.6%(100억원) 늘어난 수치다.
해외 대기업도 인정하는 품질
외국계가 점령한 시장을 빼앗아올 수 있었던 비결은 끊임없는 연구개발(R&D)과 업무 혁신, 발 빠른 사후서비스(AS)에 있다는 분석이다. 한 회장은 매년 매출의 5~10%를 R&D에 투자해 100여 건의 특허를 취득했다.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한 회장은 “미국 버티브, 독일 슈나이더 등 세계 선두권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며 “아시아에선 기술에서 따라올 회사가 없다”고 말했다.이 회사 임직원 120여 명은 3~4개월에 한 번씩 제품 기술, 업무혁신, 서비스 개선 등의 아이디어를 발표한다. 보상도 두둑하다. 원가 절감 방안은 최초 제안자에게 전체 원가 절감 금액의 10%를 인센티브로 제공한다.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확실히 해주기 위해서”라는 게 한 회장의 설명이다.
이 회사의 직원 이직률은 0%에 가깝다. 정년 퇴직자 역시 기술고문 생산고문 등으로 100% 다시 채용된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작년에 전 직원에게 기본급의 4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일부 직원은 1900%의 성과급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한 회장보다 월급을 많이 받아간 직원도 3~4명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한 회장은 “올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수출도 확대해 작년보다 100억원가량 늘어난 8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3년엔 매출 1000억원을 넘긴다는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에이알은 최근 신재생에너지 발전 수요가 증가하면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냉동 공조시설 수출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영국 필리핀에 이어 미국 텍사스 지역 기업과 수백억원의 수출 계약도 맺었다.
에이알은 생산 혁신을 위해 2019년엔 삼성전자와 중소벤처기업부의 도움으로 스마트공장을 구축했다. 오는 7~8월 시화국가산단에 공장을 증·개축해 생산량을 20% 늘린다는 계획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