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마이너스통장 개설 건수가 올 들어 다시 급증하고 있다. 신용대출을 죄려는 금융당국의 움직임이 더욱 뚜렷해지자 일단 대출을 받아놓고 보자는 금융소비자가 늘어난 데다 공모주 청약 등이 겹치면서 ‘빚투(빚을 내 투자)’ 수요까지 많아졌기 때문이다. 신용대출 증가세를 억제해야 하는 은행들은 잇달아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줄이고 있다.
규제 강해질수록 가수요 ‘폭발’
31일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이들 은행이 올 들어 지난 28일까지 새로 발급한 마이너스통장은 총 4만3143개였다. 하루 평균 1540개의 마이너스통장 계좌가 새로 열렸다.지난해 마이너스통장 수요는 대출 잔액과 신규 발급 건수 모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이 달아오른 영향이 컸다. 지난해 8월에는 5대 은행에서 5만6684건의 마이너스통장 계좌가 새로 만들어졌다.
정부는 실물경제로 흘러가야 할 돈이 자산시장으로 몰리자 신용대출 규제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대출 규제가 강해질수록 더 늦기 전에 마이너스통장을 마련해 두려는 가수요가 부풀어올랐다. 강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26일에는 하루 6681개의 계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마이너스통장 개설 열풍은 일부 은행이 연말에 대출 잔액 관리를 위해 ‘대출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등의 조치가 이뤄졌을 때 다소 가라앉았다. 지난해 말 마이너스통장 개설 건수가 하루 1000여 건으로 줄어든 배경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연말 결산을 끝낸 은행들이 올 들어 ‘대출 문턱’을 조금 낮췄고 오는 3월 대출 강화 대책까지 예고되자 마이너스통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며 “28일에는 하루 2400여 건의 통장이 개설됐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1월 엔티비, 선진뷰티사이언스, 씨앤투스성진, 모비릭스, 핑거 등 공모주 청약이 잇따랐던 것도 마이너스통장 수요를 자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마통 한도 축소 나선 은행들
은행들은 또다시 마이너스통장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29일 마이너스통장 대출의 최대 한도를 8000만∼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줄였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는 28일 금리를 0.1%포인트 높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은 대출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신용대출 억제 기조가 일반 은행에서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일반 신용대출에서 마이너스통장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금융권에서는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 규제가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주요 은행에서 월간·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받았다. 은행들은 금감원이 가계대출을 지난해보다 5% 이상 늘리지 말도록 요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대출 증가율을 8%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관계자는 “정부는 코로나19 피해자에 대한 대출은 줄이지 말라고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며 “부동산시장을 잡아야 하는 강박감이 금융시장을 왜곡하고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