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4개월 가까이 지속되면서 2016년 전국 닭, 오리 사육 농가를 공포로 몰아넣으며 피해액이 1조원에 달했던 '축산재앙'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AI가 첫 발생한 지난해 10월1일부터 전날까지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전국에서 살처분된 가금류는 2000만마리를 넘었다. 이 가운데 닭이 1730만마리, 오리 174만마리, 메추리와 꿩 등 기타 가금류는 175만마리다.
이처럼 살처분된 가금류가 늘어나면서 닭고깃값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살처분이 증가할수록 닭고기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어서다. 고병원성 AI가 확인되면 발생 농장 반경 3㎞에 있는 가금류를 모두 살처분한다.
육계 소비자가격은 지난 22일 기준 ㎏당 5859원으로 한 달 전보다 13.9% 증가했다. 육계 가격이 오르면 치킨을 비롯한 각종 닭 가공식품 가격을 밀어 올릴 수도 있다.
다만 육계 사육은 산란계 농가보다 시설의 자동화로 사람 출입이 최소화돼 있어 아직은 AI 피해가 산란계만큼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에서 부화한 후 35일 정도면 시중에 출하될 정도로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수급 대처도 빠른 편이다. 공급도 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산란계 살처분 증가는 계란 값 급증으로 곧바로 귀결되고 있다. 전날 자정까지 살처분한 산란계는 모두 1033만2000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우리나라 산란계 수가 7200만~7500만마리 수준에서 유지된 것을 감안하면 10% 넘는 산란계가 살처분된 것이다.
지난 22일 기준 계란 한 판 가격은 6610원으로, 1년 전(5269원)보다 25.4% 뛰었다. 산지 가격은 한 판 5091원으로 전년 대비 45.8%, 평년 대비 43.6% 급등했다. 계란 값 상승 폭이 가파르자 정부는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신선란과 달걀 가공품 등 8개 품목에 오는 6월 말까지 8~30%인 관세를 '제로(0)'로 면제해주기로 한 상태다.
이처럼 계란이든 닭고기든 향후 가격은 AI 방역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주는 지난 주말 전국에 비가 내린 이후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AI 확산 차단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감염 고리로 꼽히는 조류 분변 등이 빗물에 씻겨 나가고 따뜻한 기온으로 소독 효과가 높아지면서 확진 농가가 크게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다.
고병원성 AI는 강한 한파로 농가 소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이달 중순 거센 확산세를 보였지만, 지난 17일 이후부터는 2~3일간 1곳의 확진농가가 발생하는 등 소강 국면을 보이고 있다. 고병원성 AI 확산 고리를 차단할 경우 설 명절을 앞두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계란, 닭고기 공급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관측된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