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렇게 되면 저희 첫째 (아이)는 어떡합니까. 주변 사람들은 왜 (정인이 학대 정황이 보였을 때) 저한테 그런 얘기를 안 해줬을까요? 지금은 다 진술하면서."
양부모의 학대 속에 16개월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3일 방송에서 첫 재판 전 만난 정인이 양부 안모 씨의 모습을 공개했다.
안 씨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진술한 사람들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진작 말해줬다면 자신이라도 막을 수 있었는데 이제와 얘기하면 첫째 아이는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안 씨는 "결혼 전부터 입양 얘기를 계속 하고 마지막까지도 아내가 더 적극적이었다. 왜냐면 저희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저는 사실 한두 번 정도 포기하자는 말을 했었는데 아내가 끝까지 그래도 우리 (입양 결정)한 거니까 같이 용기 내서 해보자고 저한테 용기를 북돋아 줬던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안 씨는 양모 장 씨가 입양을 적극적으로 원했으며, 본인은 학대 사실조차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 과정에서 제작진이 만난 주변 지인들의 말은 양부의 주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지인은 안 씨의 평소 모습에 대해 "(정인이) 아빠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맘때 아이 지능지수가 강아지하고 비슷해서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준다’면서 8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우니까 안 안아주고 울지 않고 울음을 그쳤을 때 안아주더라"라고 말했다.
다른 지인도 "카페에 간 적이 있었는데 둘째(정인이)는 없더라. 그래서 ‘정인이 왜 없어?’ 그랬더니 (정인이 양부모가) 둘째(정인이)는 ‘차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했다"면서 "카페에서 한 시간 반 이상 머무를 동안 한 번도 (아이를) 찾지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 역시 "차 안에서 (양모가) 정인이한테 소리지르면서 화내는 걸 목격했는데, 애한테 영어로 막 소리 지르고 양부는 첫째를 데리고 자리를 피한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망 전날 아이를 데리러 온 안 씨에게 아이의 심각한 몸 상태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양부는 정인이를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또한 안 씨는 정인이 사망 3일 전, 양모 장 씨와 함께 첫째만 데리고 미술학원을 방문해 수업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술학원 원장의 말에 따르며 수업을 받는 시간 동안 양모는 물론 양부 안 씨가 둘째 정인이를 챙기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제작진이 "휴대전화로 CCTV를 본다든가 뭘 신경쓰는 모습이 보였느냐"는 질문에 미술학원 측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1,2,3차에 걸친 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음에도 막지 못한 정인이 죽음. 또 다른 정인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특히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 3차 신고의 처리 과정에 숨어있는 불편한 진실, 이른바 '월정로 비극'은 아쉬움을 남겼다. 아이의 어린이집과 3차 신고 소아과는 강서구 경찰 관할이었던 반면 양부모 거주지는 양천구였던 관계로 이 사건이 이관되는 도중 사건의 심각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의혹이다.
3차 신고자는 이미 1차 신고 당시에도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의 요청을 받아 정인이를 진찰한 적이 있는 소아과 의사였다. 그는 작년 5월 이후 정인이를 진찰한 기록을 바탕으로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으나 이 주장은 허무하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양천경찰서 측은 "정인이와 양부를 격리조치 해야한다"는 소아과 의사의 발언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