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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절망 들여다봐야 다시 올라갈 힘을 얻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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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나온 교향곡들은 대개 기쁨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장조’로 작곡됐다. 우울한 단조 교향곡은 드물었다. 귀족들이 연회를 즐기려고 경쾌한 선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106개의 교향곡을 만든 요제프 하이든도 주로 장조를 활용했다. 그가 남긴 단조 교향곡은 11곡뿐. 그중에서도 하이든은 ‘교향곡 44번 e단조’ 중 3악장을 콕 찝어 “내 장례식 때 연주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로 인해 후대 음악가들이 이 곡에 ‘슬픔’이란 부제를 붙였다.

하이든이 느낀 슬픔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재현한다. 21일과 22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올해 첫 정기공연 ‘성시연과 하이든&쇼스타코비치’를 통해서다. 지휘자 성시연(45)이 새해 처음으로 단상에 선다.

이날 공연 1부에서는 하이든의 ‘교향곡 44번’(슬픔)을 들려주고, 2부에선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의 ‘장송 음악’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실내 교향곡’을 연달아 연주한다. 실내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현악4중주 8번’을 작곡가 루돌프 바르샤이가 체임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했다. 지난 18일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만난 성시연은 “세 곡 모두 어둡고 우울한 곡이다. 절망적인 시대에 사는 우리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기 위해 선곡했다”며 “깊은 절망을 정확히 들여다봐야 다시 올라갈 힘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성시연은 2006년 세계적인 권위의 게오르그 솔티 지휘 콩쿠르에서 여성 최초로 우승한 실력자다. 이듬해에는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실력을 눈여겨본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2007년 그를 부지휘자로 임명했다. 창단 127년 만의 첫 여성 지휘자였다. 2009년에는 지휘자 정명훈이 그를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불렀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는 경기필하모닉 예술감독 겸 수석지휘자로 일했다.

이번 공연을 관통하는 주제는 ‘애도’다. 하이든 교향곡 44번에 이어 2부의 연주곡에서 주제가 드러난다. 루토스와프스키는 곡의 제목을 ‘장송 음악’으로 정했고, 쇼스타코비치는 실내 교향곡을 파시즘과 제2차 세계대전 피해자들에게 헌정했다. 성시연은 “2부에 연주할 두 곡 모두 2차대전 직후 나온 곡으로, 강렬하게 몰아치는 선율을 반복해 죽음을 묘사한다”며 “전쟁을 겪은 예술가들이 울분과 슬픔을 어떻게 표출했는지 비교하며 들어도 좋다”고 했다.

공연 레퍼토리를 살펴보면 다른 주제의식도 엿보인다. 억압된 상황을 타개하려는 의지가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하이든이 교향곡 44번을 작곡했던 1760년대 후반엔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의 문학 사조가 퍼졌다.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계몽운동이었다. 폴란드 작곡가 루토스와프스키는 1958년 ‘장송 음악’을 쓸 때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외쳤다. 쇼스타코비치는 1960년 폐허가 된 동독 드레스덴에서 곡을 쓰며 ‘파시즘’이 낳은 참상에 몸서리쳤다. 성시연은 “세 곡 모두 작곡가들이 빼앗긴 자유를 표현하려 쓴 자전적인 곡”이라며 “강렬하게 몰아치는 선율을 반복하는 등 작곡법만 살펴도 주제의식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아직도 수가 많지 않은 여성 지휘자로서 유리천장을 뚫고 있는 성시연도 비슷한 처지다. 그는 “지휘를 배울 때만 해도 여성 지휘자를 등용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솔티 콩쿠르에서도 520여 명의 참가자 중 30명만 여성이었다”며 “어딜 가도 ‘여성 최초’란 꼬리표가 붙었는데 이제는 그냥 지휘자 성시연으로 우뚝서고 싶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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