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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감시위도 소용없었다…한숨 한번 쉬고 바닥만 본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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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양형 요소로 고려하겠다던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도 결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을 막지 못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 씨에게 86억원 이상의 뇌물을 줬다고 결론 내고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2017년 2월 이후 4년 만에 마무리된 이번 재판은 또다시 재벌 총수를 구속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준법감시위 카드’ 불발
이번 재판의 핵심은 이 부회장의 뇌물 및 횡령 혐의보다는 재판부가 감형 요소로 언급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였다. 삼성이 준법감시위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면 감형 요소로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준법감시위 카드는 재판부가 먼저 꺼냈다. 2019년 8월 대법원이 이 부회장의 뇌물·횡령 액수를 2심의 36억원이 아니라 86억원으로 봐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을 때 법조계에선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으면 최소 징역 5년형이 선고된다. 판례상 집행유예 판결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 이유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례적인 제안을 했다.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삼성그룹이 다시는 같은 유형의 범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며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면 양형 요소로 고려하겠다”고 했다. 검찰 측이 “재판부가 미리 집행유예를 예단하고 있다”고 반발할 정도였는데, 상황에 따라 감형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삼성 측은 별도의 준법감시위를 꾸리고 주요 계열사 준법감시 조직도 대표이사(CEO) 직속으로 격상했다.

재판을 맡은 정준영 부장판사는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둔 ‘사법치료’ 개념을 도입한 법관으로 유명하다. 사법치료란 피고인이 법원에서 제시한 사안을 이행하면 재판부가 선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준법감시위 설치 및 운영 요청도 이런 사법치료 개념을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준법감시위 활동을 양형에 반영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준법감시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고 준법감시위와 협약을 체결한 7개 계열사 이외의 회사에서 발생할 위법 행위를 감시할 체계가 확립되지 못했다”며 “피고인과 삼성의 진정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새로운 준법감시제도가 그 실효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상 양형 조건에 참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뇌물 액수 86억원을 모두 인정해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묵시적이나마 승계 작업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통령의 요청을 기업인이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점과 이 부회장이 횡령액을 모두 변제한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2년6개월로 낮췄다.
“판결문 검토 후 재상고 여부 결정”
이 부회장은 이날 1심이 시작되고 4년 만에 선고받는 심경이 어떤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그룹에 지시한 사항이 있는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20분 앞서 법정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그저 눈을 질끈 감은 채 긴장한 표정으로 재판부가 입정하기를 기다렸다. 실형이 선고된 직후에는 멍하게 정면을 응시하다가 한숨을 쉬며 바닥을 봤다. 일부 방청객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집행하자 이 부회장은 가만히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이 부회장 측 이인재 변호인은 선고가 끝난 뒤 “이 사건의 본질은 전직 대통령의 직권남용으로 기업이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당한 것”이라며 “그런 본질을 고려해볼 때 재판부의 판단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재상고 여부를 묻는 질문엔 “판결문을 검토한 후 따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입장문을 내고 “이로써 ‘정유라 승마, 영재센터 지원 뇌물 사건’의 유무죄 판단은 뇌물 수수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의 유죄 확정과 함께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옛 새누리당 공천 개입 혐의를 제외하고 ‘국정농단’ 사건으로만 징역 20년형을, 최씨는 징역 18년형을 확정받았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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