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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감상이 아닌 체험하는 무대로 보여준 클라리넷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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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꺼진다. 어둠 속에서 8개 화면이 무대 벽에 나타난다. 화면에 등장한 사람은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숨을 깊게 들이마신 그가 화면에 비친 자신과 화음을 맞춘다. 연주한 곡은 스티브 라이히의 ‘클라리넷을 위한 뉴욕 카운터포인트’. 12분가량 합주가 이어졌다. 재즈 리듬에 맞춘 경쾌한 선율이 조화를 이룬다. 연주를 마치자 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7일 오후 8시 서울 금호아트홀연세에서 열린 김한 독주회 ‘백 투더 퓨처’의 한 장면이다.

이날 100여 명의 관객들은 연주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무대를 체험했다. 청중들을 무대로 끌어당긴 건 미디어아트였다. 미리 녹화한 8가지 영상이 화면에서 시차를 두고 반복됐다. 연주할 때도 주 선율을 모방해 반복하는 카논이 이어졌다. 변주와 반복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황진규 음악평론가는 “가장 인상 깊은 무대였다. 김한의 뛰어난 기량과 탁월한 음악성도 드러난 연주였다”고 평했다.

‘클라리넷을 위한 뉴욕 카운터포인트’는 미국 작곡가 라이히가 1985년에 쓴 곡으로, 구성이 단순하다. 코드 한두 가지를 끝없이 반복한다. 작곡가가 미니멀리즘을 지향해서다. 연주하기도 까다롭다. 미리 10개 성부를 녹음해놓고 무대에서 11번째 솔로 파트를 연주해야 한다.독주회에선 흔치 않은 연출이다. 대부분 연주자들은 대중에게 친숙한 레퍼토리를 고른다. 김한은 달랐다. 공연 전 인터뷰에서 김한은 “클라리네티스트로서 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함께 현대 작품으로 레퍼토리를 채웠다. 파울 힌데미트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다리우스 미요의 ‘스카라무슈‘를 선보였다. 기교를 뽐내는 카덴차와 음을 매끄럽게 이어가는 글리산도가 돋보이는 곡이다.

김한은 자유자재로 클라리넷을 다뤘다. 재즈처럼 즉흥 연주를 펼치더니 중후한 저음도 흐트러짐 없이 소화했다. 타고난 폐활량 덕분에 끝음을 처리할 때도 음량이 줄지 않았다. 황 평론가는 “화려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연주가 인상깊었다”며 “평소 접하기 어려운 현대 클라리넷 명작들을 들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평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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