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몰래 촬영한 행위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에 해당돼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심 유죄, 2심 무죄로 하급심 판결은 엇갈렸지만 대법원은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5월 버스 안에서 레깅스를 입고 있는 여성 B씨의 엉덩이 부위 등 하반신을 8초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B씨의 얼굴도 예쁘고 전반적인 몸매가 예뻐 보여 촬영했다’고 진술했으며, B씨는 “기분이 더러웠다”고 했다.
1심은 A씨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했다고 보고, 벌금 70만원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4시간 이수 명령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레깅스는 일상복”이라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레깅스는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피해자 역시 이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사건 당시 B씨의 신체 노출이 적었다는 점도 무죄의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외부로 직접 노출되는 피해자의 신체 부위는 목 윗 부분과 손, 그리고 레깅스의 끝단과 운동화 사이 발목 부분이 전부였다”며 “몰래 촬영이기는 하나, 통상적으로 비춰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또 A씨가 B씨의 엉덩이 부위를 ‘확대촬영’하지 않은 점, B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한 점 등도 무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B씨가 느낀 감정을) 불쾌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2심 판결 이후 성적 수치심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대법원은 원심을 재차 뒤집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적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공포·무기력감·모욕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며 “성적 수치심을 협소하게 이해하면 피해자로 하여금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을 느낄 것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신체 노출이 적었다”는 원심 판단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대법원은 “몰카 범죄의 대상이 되는 신체가 반드시 노출된 부분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며 “의복이 몸에 밀착하여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의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에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거나 생활의 편의를 위해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하여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촬영 당하는 맥락에서는 성적 수치심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적 자유’를 구체화해, 자기 의사에 반하여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를 최초로 판시했다는 의의가 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