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부동산 시장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거래 뚝 끊긴 맨해튼
고가 주택이 많은 맨해튼은 지난해 사상 최악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미 부동산 업체 더글러스엘리먼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맨해튼에서 이뤄진 코업과 콘도 매매 건수는 7048건으로 전년(1만48건)보다 30% 감소했다. 뉴욕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겉잡을 수 없이 쏟아져나오자 주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코업은 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부동산을 뜻한다. 아파트를 한 채 단위로 매매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건물 지분을 나눠 갖는다. 보유 지분이 클수록 로열층에 있는 집을 배정받게 된다. 조합원들은 입주 희망자의 사회적 평판, 성향 등을 고려해 입주자를 최종 선정한다. 맨해튼의 경우 센트럴파크 웨스트 지역에 코업 형태의 고급 아파트가 즐비해 있다. 콘도는 한국의 아파트와 같은 주택이다.
지난해 맨해튼의 주택 거래는 급감했지만 매매 가격은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아파트 매매가 중간값은 100만5000달러(약 11억4345만원)로 전년 대비 4% 감소한 데 그쳤다. 평균 매매 가격은 194만달러로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평균가의 경우 고가 주택이 어떤 가격에, 얼마나 거래되느냐에 따라 편차가 생기기 때문에 통상 연도별 주택 가격 비교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뚜렷한 K자형 구조
코로나19 확산 이후 극심해진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뉴욕 부동산 시장에서도 두드러졌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부유층은 고가 주택을 공격적으로 사들였지만 무주택자의 신규 주택 매입은 사실상 거의 없는 ‘K자형’ 구조가 관측됐다는 얘기다.주택을 매입하는 사람들은 더 큰 집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작년에 판매된 맨해튼 아파트 면적은 대개 1217제곱피트(약 113㎡) 규모로 파악됐다. 전년에는 1148제곱피트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고급 주택의 가격은 지난해 더욱더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뉴욕에서는 매매가가 500만~2000만 달러 수준이면 통상 고급 주택으로 분류된다. 이들 주택 가격은 지난해 1년간 20% 이상 올랐다.
조나단 밀러 더글러스엘리먼 감정인은 "가격이 오른 건 고가 주택에 한정됐다"며 "주택 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사실상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점점 늘어나는 거래량
코로나19 확산 이후 거래가 뜸했던 맨해튼 부동산 시장에서는 연말이 돼서야 분위기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난 4분기 주택 거래량은 1894건으로 전분기(1556건)보다 338건 증가했다. 통상 연휴 기간인 겨울에 접어들면 거래가 감소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매물로 나온 아파트가 매매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지난 4분기에는 평균 132일이 걸렸는데, 이는 전 분기(153일)보다 21일 줄어든 것이다. 다만 여전히 2019년 동기간과 비교하면 매매 기간이 길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부동산 기업 브라운 해리스 스티븐스의 베스 프리드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맨해튼 부동산 시장을 휩쓴 거래 절벽에 대해 "모두가 겁에 질렸다"고 회상했다. 프리드먼 CEO는 "가격을 10% 낮춰주지 않으면 아파트를 사지 않겠다는 매입자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연말에 주택 매매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보고 기분 좋게 놀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면서 올해 주택 시장이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주택 계약 건수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더글러스엘리먼에 따르면 지난달 맨해튼에서는 528건의 주택 거래 계약이 체결됐다. 전년 동기(449건)보다 많다. 동기간 콘도 계약 건수는 304건에서 323건으로 늘었다.
미 부동산 업체 코코란의 파멜라 리브만 회장은 "2020년은 시작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끝났다"며 "이제는 맨해튼 부동산 시장이 안정과 회복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