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인사들은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만 지고지선(至高至善)하며, 일반 행정공무원과 사법부 같은 ‘임명 권력’에 절대우위를 지닌 것인 양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선출 권력의 지시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임명 권력이 권한을 부당하게 남용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여과 없이 내비친다.
쏟아지는 '선출 권력' 우위說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짓밟는 일을 반드시 막겠다”고 주장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과 법원이 민주주의를 지키기보다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검찰총장은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아니다”고 강조했고, 친여권 인사인 정대화 상지대 총장은 “판사 한 명 혹은 세 명이 내리는 결정이 진실이라고 믿고 반드시 따라야 할 이유가 없다”고까지 했다.이처럼 위압적인 통제와 복속만 강조하는 강경한 주장들을 접하다 보면 ‘임명 권력’은 그저 ‘선출 권력’이 시키는 것만 수행해야 하는 존재인지 의문이 절로 든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검찰과 경찰의 행패는 형식적으로나마 선출된 권력의 수족으로 움직이면서 빚어진 것이 아니었나.
또 ‘선출 권력’의 말만 잘 들으면 국사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선거와 정치에 휘둘리지 말라고 임명직 공무원을 둔 것은 새까맣게 잊었는지, ‘늘공(늘 공무원)’이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눈치를 보며 위헌·위법 소지가 농후한 정책을 쏟아내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선출 권력의 절대우위를 주장하며 사법부를 윽박지르는 모습에선 모골이 송연해진다. 사법부가 ‘비(非)선출 권력’으로 구성된 연원을 고려할 때, 자칫 역사의 교훈을 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치기 힘들다.
'역사의 교훈' 담긴 민주주의
현대 주요 국가에서 사법부를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배제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은 선거로 집권했던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행한 폭정의 기억 때문이다. 1933년 ‘수권법’을 통과시킨 나치는 행정부에 무제한의 입법권을 부여했고, 헌법과 의회, 나치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무력화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히틀러 같은 괴물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각국의 제도 개선이 집중됐고, 군중의 광기를 제어하기 위해 ‘선출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 간 견제와 균형 조치가 이뤄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합리적 대중의 손아귀에 장악되기 쉬운 의회 권한은 의도적으로 약화됐고 사법부는 비선출직으로 구성돼 포퓰리즘 과속을 제어할 의무가 부여됐다.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투표에서 보듯 대중의 비합리적 선택은 잊을 만하면 반복되곤 한다. 민주주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안전장치들로 구성됐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사법부로 대표되는 ‘임명 권력’이 ‘선출 권력’의 지배하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매우 위험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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