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저 자신을 위해 봉사해요. ‘안나의 집’에 하루 한 끼 도시락을 가지러 오는 노숙인들에게서 하느님을 봅니다.”
24년째 노숙인에게 도시락 봉사를 해 온 경기 성남시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 신부(64·사진)의 말이다. 지난해 말 안나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는 지하 1층 주방에서 채소를 썰고 있었다. 주황색 앞치마를 두른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했다. “누군가에게 뭔가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한 일이잖아요. 제게는 이게 기도요 미사입니다.”
김 신부는 최근 《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니케북스)을 펴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쓴 275일간의 일기다. 김 신부는 “만약 안나의 집 직원들이나 내가 코로나19에 걸린다면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이 언제나 나를 괴롭힌다”며 “하루하루 무사히 보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이 준 기적”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김 신부의 본명은 빈첸시오 보르도다. 1990년 한국에 와 1992년부터 성남에서 빈민 사목을 해왔다. 1998년 문을 연 안나의 집은 ‘안아 주고 나눠주고 의지하는 집’이란 뜻이다. 노숙인 기숙사, 자활센터, 청소년 쉼터와 자립관 등도 운영 중이다.
“처음 안나의 집을 세웠을 땐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민원도 많이 제기했죠.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응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안나의 집에 도시락을 받으러 오는 노숙인은 하루 600~800여 명. 그 한 끼를 위해 강추위 속에서 두세 시간을 걸어서 오는 사람도 많단다. 김 신부는 “일자리를 찾아 스스로 다시 일어서거나 안나의 집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며 “그들이야말로 저에게 깨달음을 주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지하 1층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했지만 지금은 안나의 집 맞은편에 있는 성남동성당 마당에서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체온 측정과 소독, 거리두기 등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킨다. 김 신부는 “지금까지 도시락 봉사를 중단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코로나19 사태에도 계속 후원하는 기업들과 매일 찾아오는 30여 명의 봉사자에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2015년 한국에 귀화한 김 신부는 고향 생각이 날까 봐 이탈리아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한국에서 평생을 보낼 것”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이곳에서 노숙인을 위해 봉사하라는 게 신이 내린 나의 사명입니다. 추운 몸보다 얼어붙은 마음이 훨씬 무섭습니다. 노숙인에게 ‘그곳에 가면 나를 반긴다’는 따뜻함을 주고 싶어요. 새해에도 도시락 봉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성남=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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