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가까이 오전 8시 출근, 밤 12시 퇴근을 반복했어요. 연구원들은 밤샘을 밥 먹듯 했죠. 국민을 구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텼습니다.”(권기성 셀트리온 연구소장)
“한밤중에 비상연락을 받고 공장으로 뛰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힘든 나날이었지만 ‘네 덕에 백신 접종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을 들을 때면 자부심을 느낍니다.”(권세온 SK바이오사이언스 품질관리팀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산 신약 허가가 조만간 나온다. 다음달엔 예방 백신 접종도 시작된다. 코로나 종식을 위한 발걸음이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과 백신 생산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이들 덕분이다.
“국산 신약 개발, 꼭 전쟁 치르듯 했죠”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해 2월 초.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임원회의에서 10개월 안에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신약 후보물질을 탐색하는 데만 1년이 걸리니 거의 불가능한 목표였습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코로나가 1년 내내 기승을 부릴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어요. 개발 도중 상업성이 없어 접어야 할 수도 있는 리스크를 안고 출발했죠.” 권기성 셀트리온 연구소장은 1년 전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지난해 2월 개발을 시작한 코로나 항체 치료제 ‘CT-P59’엔 셀트리온 연구원 180여 명의 땀이 녹아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코로나19 회복 환자의 혈액 샘플이 처음으로 들어온 건 지난해 2월 27일. 셀트리온 연구원들은 곧바로 3교대로 돌아가면서 24시간 내내 후보물질을 찾았다. 후보물질 탐색에만 수십 명의 연구원이 투입됐다. 코로나19 치료제로 유력한 후보물질을 한 달 만인 3월 23일 300개나 찾아냈다. 평소보다 5개월 정도 단축했다.
최종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과정도 도박과 다름없었다. 세포주를 찾으면 최종 후보를 정하기 전에 곧바로 배양과 정제 작업을 했다. 권 소장은 “중간에 하자가 생기면 바로 접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진행했다”며 “이 과정에서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고 했다.
4월 13일 최종 항체 후보군을 도출해낸 셀트리온은 7월 임상 1상에 들어갔다. 권 소장은 “연구원 모두 돈보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치료제 개발에 매달렸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개인적인 약속을 한두 번밖에 잡지 못했다”며 “무조건 결과물을 내겠다는 각오로 ‘올인’했다”고 말했다.
임상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해 12월 루마니아에 머물던 직원에게서 SOS가 들어왔다. “(확진자가 급증해) 여긴 전쟁터입니다. 임상 담당 의사가 자료를 정리할 틈도 없습니다.”
임상이 늦춰질 상황이었다. 2020년까지 허가 신청을 내기로 했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번에는 기우성 셀트리온 부회장이 나섰다. 그는 연말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루마니아행 비행기를 탔다. 임상을 지원하기 위해 루마니아에 머물던 직원들과 현지 의사들을 만나 문제를 하나씩 풀었다. 기 부회장은 “직원들이 확진자를 병원으로 빨리 이송하기 위해 앰뷸런스에 탑승하기까지 했다”며 “직원들의 헌신과 희생 끝에 기적적으로 조건부 승인 신청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백신 생산 최전선에 있는 게 자랑스러워요”
권세온 SK바이오사이언스 품질관리(QC)팀장은 지난해 7월 아스트라제네카, 8월 노바백스와 수탁생산(CMO) 계약을 맺은 코로나19 백신의 생산품질관리 실무를 이끌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바이러스벡터 백신과 노바백스의 단백질재조합 백신은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온도, 습도 등 배양 환경에 작은 변화만 일어나도 문제가 생긴다. 이런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담당 연구원을 호출한다. 권 팀장은 “QC팀엔 8명의 연구원이 소속돼 있는데 각자 다른 세포 배양 업무를 맡고 있다”며 “배양 과정에서 작은 문제만 생겨도 엄청난 양의 세포를 모두 폐기할 수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한 상태로 지낸다”고 했다.백신 개발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의 실무진을 대면하기 어려운 현실도 적잖은 어려움이었다. 대개 수탁생산을 할 때는 양사의 실무자들이 만나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이전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계약에선 이런 절차가 생략됐다. 일정도 빠듯했지만 코로나가 왕래를 막은 탓이다. 권 팀장은 “이메일과 화상통화로 문제를 풀어갔다”며 “독감 백신 생산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가 그나마 도움이 됐다”고 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 개발도 하고 있다. 김은솜 SK바이오사이언스 판교연구소 이노베이션팀 매니저는 “지난해 2월부터 모든 연구원이 백신 효능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연구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섭/최지원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