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제약이 최근 출시한 달팽이 점액 관련 이너뷰티 제품이 유망 스타트업 제품의 모델을 도용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29일 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경남제약은 지난 6월 스타트업 회사인 에이지엣랩스와 뮤신 및 결콜라겐 성분 제품의 ODM(제조업자 개발생산)을 위한 업무 제휴를 추진했다. 달팽이 점액에서 추출하는 뮤신은 세포재생 기능이 알려지면서 최근 미용제품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성분이다. 경남제약은 이후 약 1개월동안 에이지엣랩스로부터 관련 자료와 논문 등을 받아 제휴 여부를 검토했다.
하지만 경남제약은 7월 에이지엣랩스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뮤신을 제품명으로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계약 체결에 난색을 표했다. 이후 에이지엣랩스측이 식약처에 다시 질의한 결과 ‘상품명에 뮤신을 써도 된다’는 답변을 받아 경남제약측에 전달했지만 계약은 그대로 무산됐다.
◆경남제약, ODM 업무제휴 논의하다 '돌연 중단'
그러다 경남제약이 이달 초 뮤신과 결콜라겐 성분을 앞세운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 회사는 유명 배우를 모델로 내세우고 홈쇼핑 등 유통망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와 판매를 시작했다. 당황한 쪽은 에이지엣랩스 뿐 아니라 이 회사의 성장성에 기대를 걸고 자금 지원을 준비하고 있던 투자사들이었다. 대형 제약사가 경쟁품을 내놓은 탓에 향후 투자 심사가 난관에 봉착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2018년 설립된 에이지엣랩스는 뮤신을 독자 기술로 가공해 ‘퓨리카뮤신‘이라는 브랜드 상품을 개발하고 먹는 뮤신 제품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올해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에 선정돼 사업·연구비 등을 받기도 했다.
경남제약측은 “에이지엣랩스와의 업무제휴는 제품명 문제 뿐만 아니라 원료, 과대광고 등 마케팅 문제로 인해 중단했다”며 “달팽이 원료와 부재료(콜라겐) 원료, 제형 등에서 에이지엣랩스 제품과 차이점이 분명하다”고 도용 의혹을 부인했다.
1957년 설립된 경남제약은 비타민 건강식품 '레모나'로 유명한 기업이다. 2000년대 들어 경영권 분쟁 등으로 주인이 수 차례 바뀌는 과정에서 투기 자본의 먹튀 논란에 휩싸였고, 이로 인해 연구개발(R&D)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남제약은 지난해에도 또 한 차례 매각이 이뤄져 현재 최대주주는 경남바이오파마 외 위드윈인베스트먼트 등 특수관계인들로 28.2%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경남제약 노조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경남제약은 외주가공화를 줄이고,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충남 아산 생산설비에 대해 직접투자 및 직접 생산을 늘려야 정상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영업비밀 침해 논란
대규모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제품 컨셉과 유사한 제품을 출시해 논란을 빚은 사례는 반복돼왔다. 최근에도 '김치시즈닝' 제품을 개발한 한 스타트업이 유사제품을 생산한 다른 업체 때문에 곤혹을 겪은 바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이같은 논란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영업비밀 여부 등에 대한 입증이 어려운 점, 처벌 정도나 손해배상액 규모가 미미하다는 점 등을 꼽는다. 한 투자 자문 변호사는 "제조과정이나 보관방법 등에서 기술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들에 대한 노하우가 인정이 된다면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영업비밀 여부는 사실관계에 따라 인정범위가 천차만별이라 입증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연방상표법처럼 트레이드드레스(trade dress·상품이나 서비스의 전체적인 이미지) 라는 개념을 도입해 부정경쟁방지법상 위반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판례가 생기고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컨셉을 도용당한 경우에 대해 사실관계를 증명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많은 스타트업들이 피해를 입어도 쉽게 법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