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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행동주의 펀드가 몰려온다[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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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행동주의 펀드가 몰려온다[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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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는 소규모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의 일종입니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기상천외한 운용전략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지요.

소액 펀드 투자자들이 주로 가입하는 공모펀드의 운용전략이 매수일변(롱온리)에 국한돼 있습니다. 반면 헤지펀드는 저평가된 주식을 사고(롱), 고평가된 주식을 파는(쇼트) 롱쇼트 전략, 특정 기업의 인수?합병(M&A), 사업재편 같은 이벤트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이벤트 드리븐 등 각양각색의 전략을 채택합니다.

이 중에는 경영진의 잘못된 회사 운영으로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진 기업의 지분을 매입한 뒤 회사 경영에 개입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행동주의’ 전략도 있습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은 기업개선 과정에서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고개 드는 주주 행동주의
올 한 해는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 행동주의 펀드들에게 ‘빙하기’였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상당수 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져 과도한 주주행동에 대해 이기적이란 비판이 일기 쉬운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증시에 코로나 쇼크가 닥쳤던 지난 3월의 경우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행동이 2013년 이후 가장 저조한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증시가 회복되고, 혁신기업들 위주로 급격한 회복세를 타면서 잠잠했던 행동주의 펀드들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달 초 표면화된 미국 엑슨모빌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엔진넘버원이라는 이름의 미국 신생 행동주의 펀드가 10명으로 구성된 엑슨모빌 이사회에 이사 4명을 선임하겠다고 공식 서한을 보낸 것입니다.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에 서한을 보내기 1주일 전에 설립된 회사입니다. 미국의 대표적 행동주의 펀드인 자나파트너스를 비롯해 블랙록 출신 등이 모여 창업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엑슨모빌은 오랫동안 실적이 저조하고, 많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다”며 “이러다간 한때 미국 대표기업까지 올랐다가 쓰러져버린 다른 기업들의 전례를 따를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지출을 대폭 줄여 배당금을 보전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지요.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부분은 이 운용사가 미국 내 2위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의 지지를 확보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엑슨모빌에 대한 주주들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셰브런, 로열더치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같은 다른 석유 메이저들이 탄소 배출량 축소와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새 엑슨모빌은 변화에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지요. 그 결과 지난 9월 다우지수에서 빠지는 수모를 겪었고, 배당도 올해 1982년 이후 처음으로 동결했으니, 투자자들의 불만이 큰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미국에 국한된 게 아닙니다. 한국 일본 등 전 세계 주요국 ‘간판’ 기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최근 미국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가 “LG그룹의 계열분리에 반대한다”며 ㈜LG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화이트박스는 올해 초에도 주가부양과 배당확대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최근 싱가포르의 행동주의 펀드인 에피시모가 도시바에 대해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7월 있었던 정기주총에서 자신들이 행사한 의결권이 부당하게 무효처리 됐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헤지펀드 공격에 판 깔아준 한국
행동주의 펀드들이 올해 다른 해에 비해 위축된 주주활동을 펼친 만큼 내년에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 활발하게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때 맞춰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의 활동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상법개정안이 곧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점이지요.

새 상법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행동주의 펀드들은 ‘3%룰’,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을 이용해 예전에 비해 훨씬 손쉽게 자신들이 내세운 이사나 감사를 타깃이 된 기업경영에 참여시킬 수 있게 됩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헤지펀드들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그 만큼 높아진 셈입니다.

정부?여당과 상법개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기업들이 더 투명하게 경영하면 된다”“비도덕적 방법으로 경영개입에 나서는 헤지펀드들은 글로벌 연기금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한국 기업들이 처한 현실과 글로벌 자본시장의 속성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경제계의 반박이지요.

헤지펀드의 가장 큰 존재이유는 수익성입니다. 그런데도 ‘투명하게 경영하는 기업들은 행동주의 펀드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하는 건 지극히 순진하다는 얘기입니다.

LG 계열분리에 대한 화이트박스의 반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장자 승계원칙에 따라 구본준 LG 고문이 들고 나갈 계열사들은 LG상사?LG하우시스?실리콘웍스 등 그룹 비주력 계열사들입니다.

이들이 떨어져 나가고 LG가 LG전자?LG화학?LG디스플레이 등 주력 계열사 위주로 재편된다면, 지주회사인 ㈜LG 기업가치는 지금보다 더 개선될 것이란 게 증권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그런데도 화이트박스는 ‘소액주주들의 보유지분 가치 훼손’을 이유로 LG 사업재편의 발목을 잡는 상황입니다.

이미 우리 기업들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갈라파고스’ 규제, 세계 최강의 노동조합의 존재로 힘겹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라도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헤지펀드들의 공격을 방어해내는 데 드는 막대한 추가비용과 기회손실은 우리 기업들에 추가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백신접종이 본격화 될 내년에는 올해보다 글로벌 경제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들 입장에서는 올해보다 기대요인이 큰 게 사실입니다.

그렇더라도 마냥 웃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한국 경제의 ‘첨병’인 기업들이 과연 내년에 어떤 반등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까요. 기대보다 걱정이 더 큰 연말입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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