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월요일 필진으로 선정된 덕분에 총 9편의 에세이를 써야 했다. 덤으로 주어진 추가 원고는 부담스러운 숙제가 될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번 더 전달할 좋은 기회가 될까? 코로나19와 긴 장마, 폭풍으로 사라져버렸다는 2020년은 그냥 사라진 한 해일까, 누군가에게 혁신의 아이디어와 기회를 준 고마운 해일까?
디지털 혁신으로 세 권의 책을 출간했기 때문에 한경에세이 역시 익숙한 주제로 쉽게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9편의 주제를 선정하는 가운데 “과연 그런 주제로 이어나가면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독자를 고객들과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잠시 돌이켜봤다.
출간한 세 권의 책 모두 디지털 혁신에 관한 내용이었다. 처음에 쓴 책의 내용은 매우 충실했던 것 같은데 컨설턴트 보고서 같다는 평과 함께 흥행에는 참패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은 더 쉽게 쓰기 위해 노력했는데, 내용보다도 그 과정이 더 어려웠던 것 같았다. 특히 세 번째 책은 여러 차례 쉽게 풀어나가는 과정을 반복했고, 출판사 편집장님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최근 5쇄까지 찍었다. 그런데 이번 에세이를 쓰면서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고 있다.
특정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지만 한경에세이는 직장인, 학생, 주부 등 누가 읽더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난 30년 넘게 디지털 혁신에 몰두하는 인생을 살았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이와 관련된 주제인데 독자들은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일에서 연결될 만한 고리가 있을까? 혁신이라는 주제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공감이라는 것, 또한 그것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어려운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미국 스탠퍼드대의 D스쿨과 협력해 ‘디자인 싱킹’ 을 연구하고 실제 사례에 적용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고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모습을 설계하는 기법이다. 사용자환경(UI) 설계에도 사용되고 기업의 혁신적 미래 모습을 도출할 때도 사용된다.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이 공감을 끌어내는 부분이 제일 힘들다. 미래 모습을 잘 모르는 고객과 아직 미래 모습을 설계하지 않은 컨설팅사가 모여서 공감을 끌어내려면 많은 소통을 해야 하고 실패를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논리적인 작업이지만 동시에 창의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공감’을 통한 소통, 그것은 어찌 보면 혁신을 위한 당연한 수순이다.
30년간 세계를 돌면서 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해 지낸 삶을 ‘공감’과 ‘소통’에 가장 집중하며 9편을 썼다. 딱딱한 주제로 펼쳐나간 9편의 에세이에 얼마나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다들 건강하시고 ‘혁신의 기운’ 듬뿍 받으시길 다시 한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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