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전세난으로 허덕이며 전셋값이 폭등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 과천만은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수도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셋값이 하락하고 있는데다 매매흐름도 안정적인 편이어서다. 전세 호가는 최대 3억원 하락했고, 매매가도 1억~2억원씩 하락하는 추세다. 재건축 아파트들의 신규 입주물량이 많다보니 수요 대비 공급이 큰 탓이다.
호가 최대 3억 '뚝'
2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과천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주 0.07%(21일 기준) 내렸다. 과천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달 마지막주 보합을 기록한 후 3주 연속 하락하고 있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에서 전셋값이 내리고 있는 곳은 과천이 유일하다. 임대차 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전국 전역이 전세 품귀 현상에 값이 급등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몇 달새 가격이 최대 3억원 넘게 하락한 단지까지 나왔다. 원문동의 래미안슈르(전용 84m²)는 지난 6월 10억7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지만 이달엔 7억3500만~8억3000만원에 새 세입자를 맞았다.
인근 별양동 일대 아파트들 역시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1억~2억원 넘게 내렸다. 주공5단지 역시 전세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전용 124㎡ 아파트는 지난 6월까지만 해도 8억원 선에 보증금을 받았지만 지난달 들어서는 6억원 초반대에서도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이 지역 Y공인 대표는 "그나마 임대차법 때문에 전세가격이 방어되는 분위기”라며 “임대차법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전세가격 하락세가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세가격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매매가격도 대체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원문동 래미안슈르 전용 84㎡는 작년 말 16억원에 가까운 가격대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썼지만 이달 들어서는 14억초반대~15억초반대에 실거래가가 나오는 분위기다. 신고가 대비 최대 1억8000만원 가까이 내린 셈이다.
새 아파트 물량 많아
과천 아파트의 전세가격과 매매값 급등세가 잠잠해진 까닭은 신규 입주 물량의 여파가 크다. 올 연말에 과천센트럴파크푸르지오써밋(1317가구), 내년 1월에는 과천위버필드(2128가구) 등 과천 재건축 아파트들이 줄줄이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들 아파트는 6·17 대책 이전에 분양해 중도금 대출을 받았어도 6개월 내 전입의무 규제를 받지 않는다.잔금 대출로 전환하지 않고 전세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려는 집주인들이 지난 9월부터 전세 매물을 내놓고 있다. 과천에선 지난해까지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 한 가구도 없었지만 올해와 내년에는 각각 3000가구, 4000가구씩 물량이 늘어날 전망이다. 2026년까지는 공공택지 방식으로 2만여 가구의 아파트가 분양된다.
원문동 B공인 관계자는 "지식정보타운 분양이 마무리되면서 새로 유입되는 청약 대기수요가 많지 않은 편“이라며 ”전세 수요가 적지 않지만 못지 않게 공급도 넉넉해 전세가격이 대체로 안정적인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같은 지역의 V공인 대표도 ”전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전세 대란 움직임까진 보이지 않는다“면서 ”매수 수요도 많지 않으며 간간히 급매가 나오면서 매매가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전국적 집값 폭등세에 과천의 사례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집값이나 전셋값 안정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충분한 물량 공급이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천은 강남과 접근성이 좋아 준강남으로 꼽히는 인기 지역임에도 전국적 집값 불장에서 가격 상승세를 방어하는 중이다. 각종 규제에도 공급 확대가 필요한 이유를 실제 사례로 보여주는 지역이라는 평가다.
한 부동산시장 전문가는 ”유동성 확대, 금리 하락 등 다양한 상승 요인에도 불구하고 공급엔 집값도 장사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겠느냐“며 ”정부는 과천의 사례를 학습해 시장 사이클을 왜곡하는 규제를 반복하기보다는 먼저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