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하원을 통과한 8920억달러 규모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경기 부양 법안에 대해 “수정이 필요하다”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이에 따라 부양법에 따른 코로나19 지원금 지급 등이 늦춰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영상 메시지에서 “의회를 통과한 코로나 부양법은 정말로 수치(disgrace)”라며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 다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5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법안을 제대로 읽어본 의원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과거 내가 촉구했던 부양책 내용과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와 관련이 없는 캄보디아, 이집트, 파키스탄, 과테말라 등의 개별 정책을 지원하거나 아직 열지도 않은 케네디센터,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등 낭비 요소가 너무 많다”며 “이런 불필요한 항목을 다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인에게 지급하는 현금을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인당 지급액을 현행 600달러에서 최소 2000달러로 올리고 자영업자, 특히 식당 경영자에 대한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진짜 잘못한 쪽은 중국이지 미국인들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경기 부양법에 서명하지 않을 것임을 강력 시사했으나 미국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상·하원의 표결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힘으로 통과시킬 수 있을 만큼 찬성표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법안은 하원에서 359 대 53표, 상원에선 91 대 7표로 가결됐다. CNBC는 이와 관련, “트럼프의 거부권 행사 시사는 어리둥절하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번 부양책 협상 때 현금 지급액을 줄이자고 주장한 쪽은 공화당이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일부 민주당 의원은 마지막까지 “1인당 현금 지급액이 최소 1200달러는 돼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이번 부양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법안은 그대로 시행하되 내년 초 새로운 부양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의 가장 어두운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미국 국민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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