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금융그룹이 계열사 대표와 임원 인사를 잇따라 단행하고 있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와 빅테크(대형 IT 기업) 위협 등 다각도의 위기 속에서 ‘변화와 쇄신’보다는 ‘안정’이라는 키워드가 더 중요하게 떠오른 모양새다. KB금융그룹은 18일 지주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10개 계열사 중 7곳 대표를 연임시켰다. 전날 신한금융은 14개 계열사 중 11개사 최고경영자(CEO)의 연임을 결정했다. 체질 개선에 나선 곳도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지주 조직을 슬림화하고 계열사 세 곳의 CEO를 교체했다. 내년 점포 구조 개편 작업 등에 앞선 조치다.
KB금융그룹은 지주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양종희 KB손해보험 대표를 새 부회장으로 낙점했다. 계열사 10곳 중 7곳의 CEO는 모두 연임한다. KB손해보험, KB부동산신탁, KB신용정보 등 세 곳에는 지주 등 주요 계열사 임원이 신임 대표로 내정됐다. 불확실성이 큰 대내외 환경을 고려해 조직 안정화에 방점을 둔 인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주 부회장에 양종희 KB손보 대표
KB금융그룹은 이날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를 열고 각 계열사 대표 후보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지주에 부회장 직급을 신설한 것이다. 부회장에는 양 대표가 내정됐다. 임기는 1년이다.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윤종규 회장이 지난 11월 3연임에 성공(임기 3년)했으나 차기 회장 구도는 아직 미지수”라며 “지주 부회장 직제를 만든 것은 그룹 지배구조를 안정화하고 차기 회장군을 육성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양 대표는 그룹의 공식 ‘2인자’가 되는 만큼 차기 회장 후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당초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 허인 국민은행장 등과 함께 유력한 은행장 후보로 거론돼 왔다. 내년 12월 허 행장이 추가 연임하지 않는다면 국민은행장은 ‘세대교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대표 임기가 올해 말 끝나는 10개 계열사 중 KB손해보험, KB부동산신탁, KB신용정보 등 세 곳은 신임 대표를 선임했다. 지주·은행 출신의 검증된 인물을 선임해 안정적인 중장기 경영을 꾀했다는 설명이다.
KB손보 대표에는 김기환 KB금융 최고재무관리자(CFO), KB부동산신탁 대표에는 서남종 KB금융 위험관리책임자(CRO), KB신용정보 대표에는 조순옥 KB국민은행 준법감시인이 각각 후보로 추천됐다. 지주의 ‘곳간지기’ 역할을 해 온 김 후보는 재무·리스크·홍보·인사·글로벌 등 다양한 컨트롤타워 업무 경험을 한 것이 높게 평가됐다. 서 후보는 영업·리스크 관리 역량을, 조 후보는 풍부한 영업현장 경험 등을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각 후보의 임기는 2년이며 최종 선임은 이달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확정된다.
10개 중 7개사 연임…“안정 최우선”
나머지 계열사 대표들은 모두 연임한다. KB증권, KB국민카드, KB캐피탈, KB생명보험, KB저축은행, KB인베스트먼트 등 7곳은 각각 박정림·김성현(복수 대표), 이동철, 황수남, 허정수, 신홍섭, 김종필 대표 체제를 이어간다. 추가 임기는 모두 1년이다.라임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가 예고된 박정림 대표가 연임한 것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는 평가다. 박 대표는 지난달 10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문책경고(중징계)를 받았다. 문책경고가 확정되면 3년간 금융사 임원 선임이 제한되지만 금융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가 징계 의결을 내년으로 미뤄 연임이 가능해졌다. 징계를 앞둔 상황에서 연임을 결정한 것은 그만큼 박 대표의 경영에 높은 점수를 줬다는 분석이다. KB증권은 지난 3분기에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순이익을 경신하는 등 눈에 띄게 실적이 성장했다. 내년에 중징계가 확정되더라도 잔여 임기는 마칠 수 있어 대표직 수행에 차질은 없을 전망이다.
복수 대표 체제로 운영돼 온 KB자산운용은 이현승 대표 1인 대표 체제로 전환된다. KB금융 대추위 측은 “저성장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디지털 혁신을 통해 성장을 견인할 검증된 리더그룹 형성에 초점을 뒀다”며 “재임 기간의 경영 성과, 시장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위기와 빅테크의 공격 등 금융산업의 위기적 상황을 고려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대신 내실을 기하는 데 방점을 뒀다는 해석이다. 앞서 신한금융도 14개 계열사 중 11곳의 CEO를 연임시키기로 했다.
정소람/오현아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