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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씽 스페셜…섬마다 스토리가 있는 전남 신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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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은 ‘천사(1004)의 섬’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섬이 많은 ‘섬의 왕국’이다. 1025개나 되는 섬은 저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비대면이 미덕이 된 시대, 조금은 떨어져서 나만의 서정을 느끼고 싶다면 섬들이 나직하게 속삭이는 신안에서 사색에 잠겨보면 어떨까.
동백파마벽화로 널리 알려진 암태도

신안의 관문인 압해도에서 천사대교를 넘으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암태도다. 사실 암태도는 지난해만 해도 배를 타고 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2019년 4월 천사대교를 개통하면서 암태도는 뭍으로 변했다. 돌이 많이 흩어져 있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이름 붙은 암태도는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인기를 끄는 곳이 기동삼거리에 있는 동백파마벽화다. 벽화는 집 안에 있는 산다화(애기동백) 나무를 배경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그렸다고 한다. 집주인 문병일·손석심 어르신이 모델이다. 할머니는 수줍게,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꽃이 만개하면 두 어르신이 동백꽃 파마를 한 것 같다.

벽화 주인공인 손 할머니는 그림 작업이 시작됐을 때 ‘남사스럽다’며 지우고 싶어 했지만 주변 반응이 좋아 그냥 뒀다고 한다. 문 할아버지의 동백은 할머니 벽화 위에 핀 파마머리와 비슷한 크기의 동백을 구하기 어려워 제주도까지 가서 구해왔다고 한다.

암태도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섬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농민항쟁인 ‘암태도 소작쟁의’로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1923년 벌어진 암태도 소작쟁의는 인근 섬인 자은도, 비금도, 도초도, 하의도까지 번졌다. 바다를 건너 뭍에까지 들불처럼 번져 농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암태도는 매향비도 유명하다. 향나무를 묻은 곳에 서 있는 매향비는 장고리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바닷가에 서 있다. 향나무를 묻고 1000년 뒤 다시 떠오른 향나무로 향을 피우면 미륵이 출현한다고 한다.
신안 최고의 풍경 자랑하는 자은도

암태도에서 은암대교를 타고 넘어가면 ‘사랑과 은혜의 섬’ 자은도(慈恩島)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을 따라왔던 두사춘이라는 장수가 작전에 실패하자 처형당할 것이 두려워 자은도로 숨어들었다. 다행히 생명을 건져 보답하는 마음으로 섬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고 한다. 자은도를 빼고 신안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신안 최고의 풍경이 여기에 펼쳐진다.

자은도는 해양수산부가 전국 해안에 만든 해안누리길의 일부인 ‘해넘이길’이다. 해넘이길은 송산마을에서 한운마을을 거쳐 두모마을까지 12㎞ 정도 이어진다. 그중 압권은 한운마을에서 둔장마을에 이르는 4.8㎞의 해안길이다. 걷는 내내 바다를 볼 수 있는 길은 한적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자은도에서 특히 매력적인 해변은 백길해변. 갯벌이 발달한 다른 섬과 달리 백길해변은 백사장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갯바위 낚시터도 많아 가족 단위 관광객이나 캠핑족이 즐겨 찾는 곳이다. 분계해변은 특히 송림이 일품이다. 이곳 소나무들은 조선시대부터 방풍림으로 심은 것인데, 여인의 모습을 닮아 여인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둔장해변 앞에는 ‘무한의 다리’라는 인도교가 있다. 총길이가 1004m인 이 다리를 건너면 무인도인 구리도와 고도, 할미도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무한의 다리는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한다는 연속성과 끝없는 발전을 희망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신안군 1도(島)1뮤지엄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조각가 박은선과 스위스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이름 붙였다.
보랏빛 향기가 넘실대는 박지도

안좌도에는 한국화가 중 그림값이 가장 비싼 화가로 꼽히는 김환기 화백의 생가가 있다.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적인 정서로 녹였다는 상찬을 받는 한국미술의 전설이지만, 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김환기 화백의 생가에는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안채와 사랑방 부엌과 마루가 전부다. 화백의 작품은 걸려 있지 않다. 집 앞에 딱 한 점 걸려 있는 ‘요코하마 풍경’조차 복사본이다. 김 화백의 작품은 섬이 아니라 서울의 환기미술관에 가야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작가의 흔적이 생가밖에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안좌도 남쪽 끝인 두리마을에서 박지도로 향하는 길은 온통 보랏빛 향기가 가득하다. 예전에는 박지도로 가려면 배를 타야 했는데 2011년 길이 547m의 퍼플교가 완공돼 걸어갈 수 있게 됐다. 퍼플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리가 온통 보라색이다.

섬에 들어서면 보랏빛 천국이란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눈에 보이는 모든 색채가 보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섬에 보라가 상륙한 것은 사실 꽃의 영향이 크다. 라벤더나 수국 등이 탐스럽게 피면서 보라로 주제를 정해 온 마을에 색을 입혔다. 이 때문에 마을 곳곳이 인증샷 성지가 됐다. 물이 빠지고 개펄이 드러나면 짱뚱어 등 온갖 생명을 관찰할 수 있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보기에도 좋다.

신안=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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