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전 LG화학 배터리 사업부문)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판결이 또 다시 연기됐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위원회 투표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 최종 판결일을 내년 2월10일로 연기한다고 9일(현지시간) 밝혔다. 판결일을 하루 앞두고 또다시 연기를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종 판결일은 지난 10월5일에서 같은달 26일, 이달 10일로 연기된데 이어 내년 2월까지 미뤄지게 됐다. ITC가 판결을 연기할 수는 있지만 세 차례에 걸쳐 약 넉달을 미루는 것은 이례적이다. ITC는 최종 판결을 3차 연기한 배경이나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미국 내 최근 5일간 확진자가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상황과 ITC의 고심이 맞물려 최종 판결일이 미뤄졌다고 보고 있다. 대선을 통한 정국 변화가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앞서 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 측의 영업비밀 침해 혐의에 대해 '증거인멸'을 근거로 조기 패소 예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여기에 SK이노베이션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소송 일정이 길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모두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기업인 만큼 미국 내부에선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패소 판결을 확정되는 데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진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판결 연기 이후 "올해 ITC판결이 코로나 영향 등으로 50건 이상 연기된 바 있어 같은 이유로 본다. 계속 성실하고 단호하게 소송에 임하겠다"고 밝혔고, SK이노베이션 측은 "3차 연기로 불가피하게 소송이 해를 다시 넘겨 장기화된 것은 유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에 충실하고 정정당당하게 임하겠다"고 전했다.
ITC가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의 패소로 예비 결정을 내렸고, 예비결정이 뒤집힌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LG에너지솔루션의 승소가 여전히 가장 유력하지만, 이번 ITC의 결정으로 소송 리스크가 더욱 장기화하며 현재 고착 상태인 합의 논의가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양사 모두 배터리 사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소송 장기화는 SK이노베이션 뿐만 아니라 LG에너지솔루션에도 부담이라는 분석이다.
LG화학은 지난 1일 배터리 사업을 하는 전지사업부를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출범하면서 배터리 사업에 힘을 실었고, SK이노베이션도 물밑에서 배터리 사업부 분사를 추진하고 있다. 양사의 수장인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역시 각 그룹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모두 유임됐다.
양사는 실제로 지난 10월 26일 ITC의 최종판결 연기 결정 후 입장문 등을 통해 합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바 있다.
LG화학 측은 당시 "ITC 소송에 대해서는 계속 성실하고 단호하게 임할 계획이다"면서도 "경쟁사(SK이노베이션)가 진정성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대화의 문을 열려 있다"고 밝혔고, SK이노베이션 측은 "ITC의 결과 발표 연기와 관계없이 소송에 충실하고 정정당당하게 임할 것이며 소송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도록 양사가 현명하게 판단해 조속히 분쟁을 종료하고 사업 본연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간 협상이 잘 되지 않은 이유는 보상 금액 때문이었다. 판결이 SK이노베이션 측이 승리하는 경우의 수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금액 자체가 문제가 됐다. 최종 판결 연기에 따라 양사의 협상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정부가 다시 물밑 중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ITC가 SK에 불리한 결정을 내릴 경우 배터리와 필요한 부품 수입 금지로 신형 자동차를 개발 중인 폴크스바겐과 포드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ITC의 최종판결이 미국 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한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ITC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뿐만 아니라 특허침해 소송 등 3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업 기지 구축을 위해 인력을 채용하고 공장을 짓는 등 활발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