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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현의 포커스] '1000만 관객'은 다시 못 와도…1억뷰 영화 시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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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현의 포커스] '1000만 관객'은 다시 못 와도…1억뷰 영화 시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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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형제가 1889년 세계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프랑스 라시오타 에덴극장에서 상영한 뒤 영화사(史)는 대부분 ‘극장의 시대’였다. 영화산업은 극장을 중심에 두고 ‘기획→투자→제작→배급→상영→부가수익’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가치사슬)을 공고하게 쌓았다. “제조업에 자동차가 있다면, 문화산업에는 영화가 있다”고 할 정도로 전·후방 효과도 커졌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영화산업 전반에 종사하는 사람은 3만여 명, 연간 부가가치 창출 효과는 6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내년을 기점으로 빠르게 해체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뉴스가 지난주 미국에서 나왔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WB)가 내년 개봉 예정인 제작 영화 17편을 모두 극장과 자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HBO맥스에서 개봉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여기에는 ‘듄’ ‘매트릭스4’와 같은 공상과학(SF) 대작들이 포함돼 있다.
‘코로나 쓰나미’에 휩쓸린 극장
영화 플랫폼의 무게중심이 4~5년 전부터 극장에서 OTT로 이동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작년까지는 ‘OTT가 극장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드물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모든 걸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극장은 ‘위험한 곳’으로 낙인찍혔고, 집콕 관객들은 OTT에 빠져들었다. 할리우드에선 애니메이션 ‘트롤:월드투어’를 시작으로 ‘뮬란’ ‘원더우먼 1984’ 등이 OTT에서 선보였거나 방영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사냥의 시간’ ‘콜’ 등이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직행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컨설팅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올해 전 세계 극장 수입 규모가 총 142억달러(16조원)에 머물러 지난해보다 65.5% 쪼그라들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글로벌 OTT 매출은 523억달러(약 56조원)로 작년보다 15.7% 불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할 내년에는 극장들의 사정이 다소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24년(367억달러)이 되더라도 시장 규모가 2016년(371억달러)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마당에 제작사들이 마냥 극장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영화 제작사들도 타격이 심각한데 수익을 극장과 나눠야 하는 것 또한 부담스럽다. 한국은 극장에서 수익을 가져가는 비율(부율)이 서울·수도권이 45%, 지방은 50%에 달한다. WB의 이번 결정은 이런 이유들을 다각도로 검토해 내린 결론이다. WB가 HBO맥스 상영을 통해 충당할 수 있는 제작비는 10억달러(약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영화 생태계 재구축 본격화
극장은 역사적으로 버티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미국에서 컬러 TV가 본격 보급된 1950년대에 관객을 안방으로 다 빼앗길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오히려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코로나와 대결로 그로기가 돼 KO당할 일만 남았다”(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관측까지 나온다. 상장사인 CJ CGV는 올해 1∼3분기 298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영화 생태계’ 변화도 본격화됐다. 대표적인 게 홀드백 단축이다. 홀드백은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가 다른 플랫폼으로 유통될 때까지 유예되는 기간을 말한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2017년 첫선을 보일 때 극장과 OTT로 동시에 내놓으려다가 극장들이 보이콧했던 적이 있다. OTT와 극장이 벌인 주도권 싸움의 대표적 사례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극장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았지만, 올해부터는 ‘갑과 을’이 완전히 바뀌었다. 국내에선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2주간의 홀드백 보장을 조건으로 넷플릭스 제작 영화 ‘힐빌리의 노래’를 걸었다. 미국에선 최대 극장 AMC가 유니버설픽처스와 홀드백을 종전 90일에서 17일로 단축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수익 정산도 그렇다. 관객 수에 따라 수익이 늘어나는 극장과 달리 OTT는 제작사가 저작권을 넘기는 대가로 제작비에 일정 비율의 금액을 얹어준다. 이런 방식은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안정적 수익을 투명하게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부가사업을 통해 추가 수익을 올리는 건 기대할 수 없다.

벤처캐피털(VC) 중심인 기존의 영화 투자 주체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서장원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기대수익률이 낮아지는 만큼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VC로서는 영화 투자 매력이 떨어지게 된다”며 “안정적 수익을 목표로 하는 은행 등으로 ‘큰손’이 바뀌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 이후’ 시대, 영화의 미래
결국 영화산업의 미래는 극장이 얼마나 빨리 살아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한국은 극장이 영화산업 총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극장이 부활하지 않으면, 올해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다.

이 부분에선 “V자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과 “구조적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엇갈린다. 전자는 중국의 선례를 근거로 든다.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중국에서 지난 10월 국경절 연휴(1~8일) 때 극장 수입이 사상 두 번째로 많은 39억위안(약 6474억원)에 달할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반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극장을 찾던 50대들이 OTT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이것이 극장의 빠른 회복을 저해할 것”(정인숙 가천대 교수)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분명한 건 위기에서 회복하더라도 예전처럼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쏟아져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중론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N차 관람’의 힘으로 한국인의 2019년 1인당 연평균 극장 관람 횟수는 4.37회에 달했다. 아이슬란드(4.32회) 호주(3.56회)를 앞서는 세계 1위(시장조사업체 IHS)다. 코로나 사태가 없었더라도 더 성장하기는 쉽지 않았을 상황이라는 얘기다. 정인숙 교수는 “코로나 충격 후 유명 감독과 배우,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대작 영화의 제작은 점차 어려워질 것”이라며 “로맨스 장르가 증가하거나 영화·드라마 간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신 영화 팬들은 안방에 앉아 세계 곳곳의 영화를 더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넷플릭스가 없었더라면 보기 어려웠을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은 4월 공개된 시즌 4가 스트리밍 시작 후 한 달 만에 전 세계적으로 6500만 뷰를 끌어모았다. 그 결과 한국판 리메이크가 최근 결정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극장은 옛 추억만 가득한 공간으로 화석화(化)할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극장만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흥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로맨스, 코미디 장르까지 극장에 와서 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관은 4D, 스크린X 같은 첨단 체험형 공간으로 변모해 영화 팬들을 끌어모을 것으로 본다.”(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
코로나 극복 대책 요구
고사위기 영화계 "영화발전기금 재편해 부가가치 6兆 영화산업 살려야"
“수년 전부터 영화는 수익을 못 내는 구조였다. ‘거품’이 코로나19 때문에 일찍 터진 측면도 있다.”

영화 투자를 담당하는 한 벤처캐피털(VC) 펀드매니저의 지적이다.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는데, 제작비는 급증해 먹을 게 없어졌다는 얘기다. 2018년까지 6년간 연 2억1000만 명대에 갇혀 있던 극장 총관객 수는 작년이 돼서야 가까스로 2억2200만 명대로 올라섰다. 반면 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순제작비 50억원 이상 영화는 2015년 20편에서 지난해 31편으로 불어났다. 주 52시간제 등 인건비와 특수효과(VFX) 제작비가 늘어난 게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붕괴 수준”(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이라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연간 생산·부가가치(6조원) 및 고용 효과(종사자 수 3만여 명)가 큰 영화산업이 회복 불능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인공호흡기를 달아줘야 한다”는 주장이 영화계 안팎에서 나온다.

영화판에서 제시되는 위기 극복 방안과 대(對)정부 요구사항 중 극장·제작사·배급사들의 의견이 비교적 일치하는 것은 영화발전기금의 재편이다. 영화발전기금은 관람료의 3%를 떼어 소형·단편영화 제작, 전용상영관 지원 등에 사용하는 것이다. 올해 지원 예산은 1000억원이다.

영화계 주장은 기금 징수 대상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인터넷TV(IPTV) 등으로 넓히고, 늘어나는 재원을 위기 극복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이런 방식으로 기금을 쌓고 있다. 새 플랫폼이 등장하면 그때마다 플랫폼 매출의 일부를 영화·영상 진흥 재원으로 흡수한다. 이를 국립영화센터를 통해 영화 창작, 제작, 유통, 상영 지원에 사용한다. “지원 대상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는 지적도 나온다.

제작사들은 이에 더해 극장이 가져가는 수익배분 비율(부율) 인하도 바라고 있다. 권지원 리틀빅픽처스 대표는 “제작사와 배급사는 영화를 개봉해도 제작비 회수가 어려워 개봉을 미루게 되고, 자금 순환이 안 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며 “부율을 조정해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마찬가지로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는 영화관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영화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분야별로 이해관계가 조금씩 다른 만큼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움직임이 선행돼야 한다. 이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계 의견을 모아 코로나 위기 극복 방안 및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영화정책 방향을 내년 상반기 중 마련하기로 했다.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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