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100원대를 내어줬다. 약 2년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외환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과 약 열흘 만에 다시 가파르게 하락하는 모양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미국 재정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확대, 약달러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심리가 강화된 영향을 받았다.
3일 오전 10시36분 현재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9원 내린 1099.9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에는 1098.1원까지 하락하며 신저가를 새로 경신했다. 2018년 6월15일 장중 (1097.7원) 이후 약 2년 6개월 만에 최저치다.
외환당국이 최근 가파른 환율 하락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지 약 열흘 만에 원·달러 환율은 다시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과도한 환율의 변동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장안정을 위해 언제든지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도 "정부에서도 최근 환율 움직임은 과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경제 주체가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단기간 환율이 급변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달러 약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이 원·달러 환율 하락을 이끄는 주요 요인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91.11로 전날보다 0.18포인트(0.2%) 내렸다. 올해 들어 최저 수준이다.
미국 정치권에서 경기 부양책 소식이 전해지면서 달러 값을 떨어뜨렸다. 이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공동 성명을 내고 초당파 의원들의 제안을 기초로 해 신속하게 부양책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위험자산 선호 심리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영국 정부가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백신 긴급사용을 승인하면서,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백신 허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의 매수가 이어지는 점도 환율 하락을 부추겼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6417억원을 국내 증시(코스피, 코스닥, 코넥스)에서 사들였다. 지난달에는 5조8412억원을 순매수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달러 약세를 바탕으로 위험자산 선호심리에 불이 붙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국, 하락 추세 꺾지 못할 듯 "원화 매력 높아져"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대외 여건 등을 감안하면 올해 말까지는 원·달러 환율 하락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외환당국의 실개입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하락 추세를 꺾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미국의 경기 부양책 기대감이 커지고 있고, 백신 개발 등으로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원화에 대한 매력도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 말까지 하락 추세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외 여건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당국이 개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가파른 하락 속도에만 제동을 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