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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공부는 의무였다…조선 왕의 삶은 '배움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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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연은 왕과 재상들이 모여 유학경서와 역사서를 강독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왕의 자격’이 필요했던 왕들은 이 특별한 시간을 빌려 학문을 쌓고 내적 역량을 키웠다. 좋은 정치를 위해 성현의 말씀과 역사를 살폈으며 신하들과 격없이 토론했다. 정식 회의보다 훨씬 자유롭고 진솔한 의견이 오가는 시간이었다.

세종은 수시로 경연을 열었다. 세종실록에 ‘경연에 임어했다’는 기록이 2000건 이상 발견될 정도로 경연을 아꼈다. 학문을 좋아했던 문종은 경연에 참여할 준비가 되지 않은 신하들에게 철저한 예습을 강권했다. 정조는 신하들의 수준이 마뜩잖아 경연에서 오히려 신하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이처럼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경연에 참여했던 왕들이 조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왕의 공부가 얼마큼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다수 조선 왕은 바쁜 나랏일 와중에도 매일 경연에 나갔다. 쉴 새 없이 국정을 배우고 익히면서도 유학 경전은 물론 의학 법률 농사 등 통치 관련 실용서적을 탐독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시험받고 능력을 검증받았다. 즉위 초기뿐만 아니라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생 배움을 놓을 수가 없었던 배경이다. 왕의 자리는 그만큼 무거웠다.

김준태 성균관대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왕의 공부》에서 조선 왕들이 인격을 수양시키고 맡은 바 일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했는지 알려준다.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 왕에게 공부는 미덕이 아니라 의무였다.

조선 왕은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마음공부를 가장 많이 했다. 신하가 임금에 올리는 상소에도 대부분은 임금의 수양, 즉 마음공부를 강조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 학습이 강조됐다. 군주의 정치를 논한 ‘맹자’는 왕의 필독서였다. 단종이 자주 경연을 중단하고 활쏘기 구경을 즐기는 등 나태한 모습을 보이자 신하인 박팽년은 ‘우환이 나를 살게 할 것이고 안락이 나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맹자의 말로 진언했다.

영조는 세손인 정조에게 ‘대학’ 공부를 강조했다. 어떻게 해야 객관 사물을 치열하게 파고들 수 있는지, 뜻을 정성스럽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공부법이 대학에 나 와있기 때문이었다. 영조는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마음을 바르게 만드는 방법을 세손에게 가르쳤다.

왕은 사기 한서 자치통감 같은 중국 역사서부터 국조보감 고려사 동국통감 등 우리 역사서까지 역사 공부에도 천착했다. 좋은 인재를 알아보는 법, 외교 분쟁을 해결하는 법, 정책을 개혁하는 법 등과 같은 선행 사례를 공부했다. 세조 때부터 만들어진 국조보감은 선왕이 행한 일 가운데 후대 왕들의 참고가 되고 모범으로 삼을 만한 일들을 정리했다.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정책이 만들어진 것인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등 현재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왕의 공부는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였다. 삶의 주체로서 중심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으로서 필요한 공부이기도 하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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