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내년부터 출시하는 차세대 전기차(전용 플랫폼 전기차)에 초고속충전, 무선충전, 차에서 전기를 뽑아 사용하는 V2L 기능 등 최첨단 기술을 대거 적용한다. 현대차그룹은 시속 260㎞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고성능 전기차도 선보일 예정이다. 현대·기아차는 2025년까지 전용 플랫폼 전기차 11종을 포함해 총 23종의 전기차를 잇따라 내놓기로 했다.
○5분 충전에 100㎞ 주행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본부장(사장·사진)은 2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의 세부 특성을 공개했다. E-GMP는 전기차를 위한 별도 플랫폼(핵심 구조)이다. 배터리, 모터 등 동력장치와 충격흡수장치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E-GMP에는 초고속충전 시스템이 적용된다. 800볼트(V) 고전압충전을 활용하면 18분 만에 배터리 80%를 충전할 수 있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500㎞다. 비어만 사장은 “5분만 충전해도 100㎞를 주행할 수 있다”며 “글로벌 업체들이 내놓은 전기차 중 충전시간이 가장 짧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E-GMP 차량에는 무선충전 기술도 탑재된다. 무선충전기가 깔린 주차공간에 차를 세워두면 자동으로 배터리가 충전되는 방식이다. 비어만 사장은 “기술은 이미 준비돼 있는 만큼 시장 반응 등에 따라 무선충전 차량을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에서 전력을 빼 쓸 수 있는 V2L(vehicle to load) 기능도 적용된다. E-GMP 전기차로 17평형 에어컨과 55인치 TV를 동시에 24시간 가동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캠핑장 등 야외공간에서 전기차를 커다란 보조배터리로 활용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다른 전기차를 충전할 수도 있다.
비어만 사장은 E-GMP를 기반으로 한 고성능 전기차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고성능 모델은 시속 260㎞까지 속도를 낼 수 있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3.5초도 걸리지 않는다.
○2025년까지 전기차 23종 출시
현대차그룹은 내년부터 E-GMP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첫 모델은 내년 상반기에 나오는 현대차 크로스오버차량 아이오닉5다. 현대차는 2022년 중형세단 아이오닉6, 2024년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이오닉7 등을 잇따라 출시한다. 기아차와 제네시스도 내년 각각 E-GMP 전기차를 선보인다. 2025년까지 전용 플랫폼 전기차 11종을 포함해 23종의 전기차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100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비어만 사장은 E-GMP에 탑재하는 배터리의 성능을 꾸준히 향상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배터리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다만 배터리를 직접 생산할 계획이 당장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독자 생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며 “앞으로도 국내 3대 배터리 회사(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와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배터리를 납품받고 있다. 그동안 삼성SDI 제품을 쓰지는 않았지만, E-GMP 3차 배터리 거래처로 삼성SDI가 선정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아이오닉5 등이 출시되는 내년이 전기차 대중화의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연간 10만 대 이상의 전기차 판매도 가능할 것이란 얘기다. 올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약 3만 대로 예상된다.
다만 전기차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성규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실장은 이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국판 뉴딜과 일자리 컨퍼런스’에서 “전기차 시장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5년까지는 정부의 구매 보조와 초고속 충전 인프라 구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이어 “자동차산업의 전동화 전환은 위기이자 기회”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전환에 따른 재교육과 업종전환,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병욱/백승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