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PEF)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승계와 상속에 관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PEF가 인수합병(M&A)에 뛰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승계 구도를 짜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사례도 속속 나온다.
국내 PEF A사의 대표는 주요 업종별로 중견·중소기업 대주주 명단과 나이를 엑셀 파일로 작성해 놓고 주기적으로 점검한다. 창업주가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후계 구도가 마련돼 있는지 조사한다. 승계와 상속 계획이 구체적으로 짜여 있지 않다면 ‘접촉 1순위’ 기업으로 따로 관리한다.
창업주가 PEF를 징검다리로 삼는 경우도 있다. 회사를 통째로 넘기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대신 지분 일부만 팔고 경영에 일부 참여하면서 연착륙하거나 매각 자금을 다시 PEF에 출자해 다른 사업 기회를 노리는 케이스다.
최근엔 대기업 후계 구도 변화와 맞물린 신사업 진출에서 PEF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놓고 현대중공업 유진그룹 GS건설 등이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런 사례다. 모두 창업 3~4세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거래다.
현대중공업과 GS건설은 각각 KDB인베스트먼트와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 등 PEF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원 확보에 나섰고 유진그룹도 파트너 물색에 한창이다. 지난해 형제간 그룹 분할을 앞두고 있던 KCC는 국내 PEF SJL파트너스와 손잡고 미국 실리콘 제조업체 모멘티브를 인수하면서 그룹 구도를 다시 짰다.
대기업 대주주 일가의 자금 회수 창구로도 PEF가 활발히 활용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 등 CJ그룹 대주주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CJ올리브영의 소수지분 매각이 이런 경우다. 이 부장은 지분 매각 대금으로 지주사 (주)CJ 지분을 매입하고, 일부 지분은 남겨둔 뒤 기업공개(IPO) 시기에 맞춰 회수를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LG그룹은 2018년 구광모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판토스 지분을 미래에셋대우PE에 매각했다. 판토스는 최근 구 회장 숙부인 구본준 (주)LG 고문의 계열분리 작업에 포함되기도 했다.
김동관 사장 등 김승연 한화 회장의 아들 삼형제가 100% 지분을 보유했던 한화S&C(현 한화시스템)도 스틱인베스트먼트에 일부 지분을 매각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뉴스